93년 11월 29일제 14대 총학생회 선거는 학우들의 저조한 참여 속에 끝났다. 단일 후보로 치러지거나 후보 등록을 한 자가 없어 선거 일정이 연기되기도 했다. 학우들의 투표율 역시 50~60%에 그치는 등 학생회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이 저조한 선거였다. 매년 11월은 전국 대학가들의 총학생회 선거기간이다. 그러나 학우들의 저조한 참여와 무관심 속에 총학생회 선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리투표 논란 ▲저조한 투표율 ▲총학생회 부정선거 논란 등의 여러 문제가 매년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다. 실제로 서울대는 2003년부터 지
97년 10월 13일이번에 진행된 가을 학술제를 살펴보면 대학사회의 학술제적인 모습보다는 다소 ‘보여주기식’ 행사의 급증과 이로인해 일반 학우들 조차 학술제가 아닌 ‘가을 대동제’로 인식하게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19년전 기사는 이름 무색한 ‘학술제’라는 제목을 걸고 학술제 본연의 의미를 가지는 행사보다는 학우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사가 더 많은 학술제를 비판하고 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현재 학술제는 과거와 다를바 없이 본연의 의미를 가지는 행사보다 보여주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열리고
94년 10월 31일요즘 학교 측과 재단 측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대학종합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97년까지의 발전계획을 바탕으로 ▲경영관의 착공 ▲의학관의 증축 ▲제2이공관의 준공 등 실로 바쁜 걸음에 일편하는 모습이다. 94년도에 실린 기사를 보면 그 시절의 우리 학교는 ‘젊은 대학, 21세기를 준비하는 대학’의 표어를 내 걸고 미래를 향한 다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난 8월 18일에도 이와 같이 학교는 캠퍼스 환경 개선 추진을 위한 중앙도서관 리모델링을 계획했다. 이에 학교는 학우들을 대상으로 ‘중
90년 7월 9일 인천·평택지역 학우들이 통학버스 이용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학교측은 학우들의 불편이 있다는 실태를 파악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92년 8월 24일통학버스 요금인상 논의가 91년 2학기부터 진행해 1년 만에 결국 타결됐다. 하지만 통학버스 배차시간조정과 과밀승차에 대한 대처방안이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학교측은 ‘통학버스 이용하는 학우가 7백 명뿐이다’ 는 이유로 관여하지 않았다. 이에 당시 인권복지위원장 전미영(심리) 동문은 “학교측의 불성실한 자세는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6월 2일 본보 329호에는 ‘간단한 메뉴 조작으로 메일발송 가능’이라는 기사가 담겨있다. 현재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메일을 발송하는 방법’을 학보에 담았다는 것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를 통해 그 때 그 시절에는 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만큼 정보통신기술이 상용화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과거와 달리 정보화 사회고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메일 뿐 아니라 다량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새로운 인간관계 네트워크가 등장했는데 그
1995년 5월 8일 본보 294호에는 ‘경영관 공간배치 학생자치 기구 배제’라는 기사가 담겨있다. 이 기사는 당시 경영관이 설립되면서 경영관 공간이용에 대해 경영대 학생회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채로 학교측이 공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학생자치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간이용 결정에 학우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기에 학우들의 편리를 고려해야한다는 내용이다.1995년에는 학생자치공간 배정권한이 학교에 있었기에 학우들은 공간위원회 회의에 참가해 의견을 피력하는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
1998년 5월 25일에 본보 343호에는 IMF 사태(이하 IMF) 이후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는 실업률 문제의 실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국민승리 21 실업대책본부 박용진 조직부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98년 2월 우리나라에서는 실망 실업자를 포함해 3백 48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 당시 정부는 IMF 이후 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하여 5.9%에 달았다고 보고했다. 대학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98년 1/4분기 취업률은 6.8%에 그쳤으며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직하지 못한 신규실업자의 수 역시 급증했다. 특히
1996년 4월 1일 발행된 본보 제 309호 1면에는 학교가 실시한 학부제에 대한 학우들의 설문조사결과가 실려 있다. 설문조사 결과 학부제에 대한 찬성은 50.8%, 반대는 49.2%로 어느 입장 모두 지배적이지 못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해당 사안에 대해 반대한 학우들의 절반이 ‘학부제의 긍정적인 취지에는 찬성하나 시기, 방법적인 면에서 부족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학우들의 의견이 수렴되고 또 시기나 방법적인 측면에서의 조율이 진행되었더라면 위와 같은 반대의 목소리는 찬성의 목소리로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
본보 제 591호에 기재된 아주문화비 관련기사에 따르면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는 제 12차 중운위 회의에서 아주문화비를 등록금고지서에서 기재하지 않는다는 안건을 아주문화 교지편집위원회(이하 아주문화)와 단 한 차례의 협의도 없이 단독으로 의결했다. 그 결과로 학교 측은 등록금고지서에 아주문화비를 사실상 제외했고 아주문화는 이 사안에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 이후 아주문화측은 아주문화비가 등록금고지서에 재등록되기 위해 명문화하려고 노려했다.결국 지난해 11월 제 21차 중운위 회의에서 아주문화의 거취에 대한 재논의가 있었다.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