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이 과거 학보에서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커뮤니티, 특히 익명게시판으로 이동한 시점에서 학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본보 창간 44주년을 맞아 이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공론장으로 자리 잡은 익명게시판, 그러나…

‘공론장’은 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양의 주제를 두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그 속에서 여론이 형성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공론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매체 수단을 통해 의견을 공유하며 모으고 하나의 주류 의견으로 모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한 공론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장소도 바뀌어왔다는 특징도 갖는다. 20세기 중·후반 신문이나 대자보 등과 같은 오프라인 매체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공론장은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빠르게 보급된 인터넷으로 인해 온라인 매체 속에서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어 201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과 함께 등장한 SNS는 이제 ‘손 안의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대학가에서는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과 어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의 게시판을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들이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애용하는 커뮤니티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SNS 상의 익명게시판들이 학내 주요 공론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단연 접근성과 익명성이었다. 과거 오프라인 매체나 인터넷 매체에 비해 뛰어난 접근성을 갖는 SNS 매체는 거기에 익명성까지 더해지며 특히 20대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공론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많은 대학생들이 익명 커뮤니티를 주요 공론장으로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성이 보장되면 많은 사람들이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선이(사회) 교수는 이를 언급하며 “특히 SNS에 형성된 공론장에서 오가는 내용들은 대부분 가벼운 내용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대학 내 주요 공론장의 지위를 차지한 익명게시판들에서도 의견의 개진과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학교와 학생회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 이슈에 관한 토론도 진행된다. 익명성을 갖는 게시판에서 자유롭게 공론화가 이뤄지면서 학내의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규성(소프트웨어·2) 학우는 “주제와 상관없이 ‘지성인’으로서 토론하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사회적인 의제에 무관심한 학우들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 공론화시키며 타인의 견해를 들어보려는 시도는 좋은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익명게시판의 고유 특성인 익명성으로 인해 문제점은 계속해서 두드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학우들이 익명성의 뒤에 숨은 채로 무분별한 비난과 비방을 일삼거나 혹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게시하는 등의 무책임한 발언을 게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책임감 없는 발언들이 공론장에서 오간다면 공론장 자체에서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학교의 주요 커뮤니티인 대나무숲과 에브리타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현 실정이다. 자체적인 필터링을 거치는 대나무숲은 덜한 편이지만 이마저도 없는 에브리타임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정주원(사회·3) 학우는 “부분적으로 실명제가 존재하는 대나무숲에서도 종종 의견 개진의 자유가 다른 자유들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진다”며 “대나무숲이 이 정도인데 다른 익명게시판들은 이보다 더 할 것이다”고 비판했다.

특히 과거 존재했던 ‘아주인’의 익명게시판이 이러한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아주인은 지난해 이전까지 우리 학교의 최대 커뮤니티였지만 아주인 내 익명게시판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비난이 무분별하게 오가는 곳이었다. 결국 2016년 2학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학생 대표자들의 논의 끝에 폐지가 의결됐다. 이에 대해 전찬영(행정·4) 학우는 “과거 아주인 익명게시판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속칭 ‘일베’와도 같은 곳이었다”며“익명게시판에서는 관리자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결국 학우들의 익명게시판에 대한 인식 정도는 매우 나빠졌다. 단적으로 지난 1학기 전학대회에서의 ‘파란아주 익명게시판 개설’ 안건은 재적 73명 중 53명의 대표자의 반대로 부결됐다. 당시 대표자들은 “익명게시판에서 낭설과 비방이 무분별한 현실이다”며 “학생 사회의 안정을 위해 익명게시판은 없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견해를 밝혔다. 대학 내 대표 공론장으로 자리를 잡은 익명게시판들이 역설적으로 학우들이 기피하는 공간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한편 익명게시판에서 다뤄지는 소재가 지나치게 가벼워 거대 담론으로 끌고 가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윤동민(경영·3) 학우는 “공론화된 글 외에 대부분은 의논할 필요가 없거나 의논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대학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대학 내 주요 공론장으로써의 역할을 해왔던 학보를 비롯한 대학 언론은 이제 그 지위를 익명게시판에 내줬다. 많은 학우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익명게시판을 점차 선호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는 기성 신문 매체에서도 일어난 현상이었지만 대학 내 주요 공론장이었던 학보에서는 이것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와 동시에 학보는 대학생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만 갔다. 이에 대해 아주문화 박성범(미디어·2) 편집장은 “대학 언론이 이전과 같은 공론의 장의 중심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언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기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익명게시판에서 공론화된 내용 중 정확한 사실을 찾아내 학우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학보는 익명게시판에 게시되는 정보 중에서 중요하거나 사실 관계의 파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선택해 취재를 거쳐 신뢰성 있는 정보를 학우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익명게시판들이 대학 언론보다 공론화하는 이슈가 더 많지만 익명성에 의존한 정보는 그 신뢰성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강학보 현강우 기자는 이를 언급함과 같이 “대학 언론이 할 일은 앞으로도 ‘사실의 파악’이다”며 “이러한 부분들을 학보가 파고들어 독자들에게 신뢰도 높은 정보를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타 학보의 기자도 “익명게시판은 ‘찌라시’에 불과할 뿐이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학보가 익명게시판을 견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익명게시판에서 제기된 비판을 현실 세계로 끌어오도록 도와야 하는 것도 대학 언론의 역할이다. 조직된 힘을 갖추고 있는 대학 언론이 익명게시판에서 제기됐지만 단발적인 이슈로 끝날 수 있는 주제를 계속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편집장은 이를 설명하며 “온라인에서의 이슈를 오프라인으로 끌어오는 것이 현재 대학 언론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학보는 학내 생산적인 논의의 진행을 위해서도 필요한 정보의 원천이다. 학생회 선거철과 같이 학우들의 논쟁이 활발해지는 기간에는 익명게시판 외에도 다양한 매체에서 많은 논쟁이 이어진다. 하지만 ‘뜬구름 잡기’식의 논쟁은 소모적이지만 근거가 지속적으로 보충되는 논쟁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이때 학보의 기사가 근거를 제공한다면 학보가 생산적인 논쟁들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본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김헌태(경제·3) 학우는 “학보가 공론화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매체로 거듭난다면 학우들이 학보를 더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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