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조작 인간이 태어난다면

생명공학기술로 장애아를 감별하는 것부터 동물 복제 기술까지 과학은 나날히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윤리적 의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DNA 조작으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생명의 본질과 의의에 대해 살펴본다.
 

지난 5월에 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 결과 브라카(BRCA1)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죽은 모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이유로 유방암에 걸리기도 전에 유방을 절제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시행되고 있지 않지만 실제 미국은 누구나 약 20만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면 자신의 유전자 중 1백여개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검사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그 기술이 상용화됐다.
지난 1997년에 만들어진 영화 가타카는 인공적으로 유전자 조작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간과 자연적으로 출생한 인간이 두 개의 계급으로 분류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생명공학(BT)은 지난 1백년간 정보기술(IT)과 함께 가장 발전한 기술로 꼽힌 것을 고려할 때 영화의 배경이 터무니 없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지난 2000년 완료돼 현재 인간의 유전자 지도는 모두 완성된 상태로 이후 유전자 분석 기술은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생학과 유전자 조작

우생학이란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꾀하기 위해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연구되는 학문이다. 영화 가타카의 배경이 바로 우생학적으로 이뤄진 사회다.
마이클 샌델은 저서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에서 우생학적 유전자 조작이 공리주의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행복이 곧 최대의 행복이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효용과 행복의 증진에 두어야 한다는 체계를 뜻한다.
우생학적 유전자 조작은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신체적 능력이나 정신적 능력을 강화시킨다. 강화된 능력들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효용과 행복을 최대화 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를 확장시킨다면 공리주의적 유전자 조작은 인간을 각각 다양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아닌 사회전체의 효용과 행복을 늘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이에 인간의 가치는 개개인이 최고의 존엄성을 지닌 존재가 아닌 사회의 효용에 기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 중위가 달라지게 된다.
우생학적 유전자 조작에 대해 우리 학교 송하석(기초교육) 교수는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층위에 따라 직장인의 연봉 등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은 평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송 교수는 “인간을 과학적으로 조작해 만들어진 풍요가 진정한 가치를 지닌 풍요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연대와 겸손을 지켜야

모든 유전자 조작이 사회의 효용을 위해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몇 년전 워싱턴 포스트지에는 한 청각장애를 가진 레즈비언 커플이 자신의 아이를 청각장애아로 태어나게 한 사례가 발표됐다. 이 커플은 듣지 않고 사는 삶의 방식에 굉장히 만족하고 이 모습 그대로 삶의 진정한 풍요를 느낀다며 5대째 청각장애인 가족에서 정자 공여자를 찾아 청각장애 아들을 탄생시켰다.
당시 이 사례가 발표되자 사람들은 ‘어떻게 자식에게 고의로 장애를 유발시킬 수 있냐’며 비난했다. 하지만 장애가 아니라 좋은 능력을 고의로 적용시키는 것은 비난받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한 물음을 다시 제기할 수 있다. 자식의 유전자를 조작해 태어나게 하는 것이 장애든 어떤 유전적 강화이든 윤리적으로 금지돼야 하는 이유는 생명의 본질에 있다.
생명의 본질은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는 우연성에 있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생명은 우연적이며 언젠가는 죽는 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존 로크는 “우리의 생명과 자유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자,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산물이다”고 말했다.
또한 자유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우리가 무엇에 대해 자유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그 대상을 우리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다”고 말하며 자유에 대해 고찰했다. 진정한 자유는 선택하는 자유가 아니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자유라는 것이다. 생명에게 부여된 이 자유는 근원적인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우리는 ‘왜 저렇게 태어났어’라며 타인의 선천적인 부분에 대한 비난을 가하지 않는다. 개개인의 선천적인 성질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님을 알고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전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유전공학의 발달은 이러한 비난을 개인에게 돌릴 수 있게 한다. 이는 사회적 연대를 없애고 성공과 실패는 모두 개인의 탓으로 여기며 ‘그럴 수도 있지’와 같은 어떠한 관용도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선택받는 생명에 대해 마이클 샌델은 저서를 통해 ‘정복과 통제의 가치가 우연과 경외의 가치를 넘어서선 안된다’고 말하며 우연이 낳는 인간 사회의 윤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생명의 우연성은 우리에게 존중을 알려주고 이 존중은 서로에 대한 배려를 마련한다.

 윤리의식 없는 과학 발전에 경각심 가져야
생명공학계는 단일적 특성을 가진 종족은 도태할 수 밖에 없고 생물학의 목표는 다양성에 있다며 이러한 윤리적 논의에 대해 긍정한다. 또한 유전자를 선택해 조합하는 것이 기계처럼 최고의 성능을 지닌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생명은 본래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이 외부적 요소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생기는 창발 현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부품으로 조합하면 좋은 성능으로 만들어지는 기계와 달리 인간은 아무리 좋은 요소들을 결합시킨다고 해도 최고의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에 현재 논의되는 유전자 조작 인간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밝혀진다.
생명윤리에 대해 강의하는 우리 학교 김혜선(생명공학) 교수는 “아무리 비현실적인 기술이라도 이러한 고민은 과학자로서 당연히 책임감을 갖고 고민해 봐야할 문제임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모든 과학 기술에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이 목적은 윤리적 고민을 충분히 거친 것이어야 한다”며 “윤리적 문제 때문에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 안되는 것인가는 내가 대학에 와서 과학공부를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자신의 과학기술에 대한 책임과 목적은 뚜렷히 해야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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