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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의 향연 속에서
  • 조승현 객원기자
  • 승인 2017.03.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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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연장에만 들어서면 예민해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위 '관크(관객크리티컬)'라 불리는 주변의 방해공작을,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수준으로 꽤나 경험해서인지 내 역치값이 많이 오르게 됐다. 허나 무뎌진 감각에도 예상치 못한 공격이 가해지면 눈살이 찌푸려지기 마련이다.

우연한 기회로 국립무용단의 '향연' 초대권을 받게 됐다. 공연장에서 프로그램북을 펼쳤지만 한국무용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적혀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시작부터 환상적이었다. 정구호 디자이너가 연출을 맡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나는 미안하게도 전통 무용은 투박한 면이 많고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향연은 전통 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내며 1막이 채 끝나기 이전에 내 오만한 판단에 반례를 들어주었다. 구도적으로 제할 것을 제했음에도 화려한 여백의 미와 무용수들의 절제된 몸짓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2막에서는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살랑이는 옷자락과 그 끄트머리에서 파도치는 수건에 눈을 뗄 수 없었던 살풀이춤, 바라를 부딪히는 속도를 천천히 올리며 흥을 돋우던 바라춤 등 전보다 빨라진 템포와 웅장함이 공연을 장식하고 있었다. 잔잔하고 절도있던 1막과는 다르게 심장을 때리는 북소리가 모두를 두근거리게 했으나 그 무렵 원치 않는 불협화음이 뒤통수를 때렸다. 그런데 이 소리, 심상치 않다.

좌석 바로 뒷 열에서 한 사람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데 벅차오르는 감동을 무 베듯 잘라버려 고개가 절로 푹 숙여졌다. 음악에만 집중하려 했으나 박수 소리는 작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간만에 행복한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마에 항의하는 글귀를 새기고 뒤돌아 한껏 노려봤으나 이 사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되려 소리를 키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나만 애태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이원생중계의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근처의 성난 관중들이 늘어났다.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지던 박수가 다시 한 번 내린 막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묻힐 때쯤 나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상은 뒷전이고 아직 공연이 못해도 절반은 남았을 텐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시퍼렇게 날이 선 눈으로 이 엄청난 대역죄인을 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하게 소리를 더 키워나갔다. 마치 한 명의 독립투사와 같다는 느낌이 들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원래 국악 공연이 이런 것이라 생각하기엔 대다수가 불편함을 격렬하게 티내고 있지 않은가. 불쾌한 다수와 당당한 극소수 속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려져갔고, 나를 포함한 다수가 생각했던 바로 그 상식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눈앞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희와 마녀사냥을 방관한 죄의식이 절정에 달하는 동시에 소고춤 역시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날아다니는 푸른 한복과 작은 소고에서 미친듯이 쏟아져 나오는 심장소리는 불안에 떨던 내 손에 땀을 쥐게했다. 무대 정중앙의 바닥을 뛰놀던 두 발이 소고소리와 더불어 하늘을 찍고 내려오자 별안간 벼락소리가 뒷전을 때렸다. "잘한다!"

평소였다면 당장 어셔에게 불만을 토로했을텐데 그 강렬한 외침은 오히려 내 답답한 속을 풀어내는 듯한 쾌감을 주었다. 미동도 없던 관중들도 못내 점점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음악과 무용, 박수소리와 "얼쑤!", "좋다!" 등의 추임새들이 한 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공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기분 나쁜 줄 알았던 비를 왕창 맞고 나자 공연이 더 또렷이 보였고 더 청명하게 들렸다. 관객 대다수가 몰상식을 상식으로 알고 소리없이 억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손을 내민 한 선구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돼 폭발하는 에너지에 몸을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오고무에 이어 마지막 신태평무까지 국립무용단의 향연이 마무리되는 동안 밀고 당기고 맺고 푼다는 국악의 기경결해(起耕結解)에 더욱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향연은 절제의 극한으로써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그 절제의 정점 위에 관객은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표현해 공연을 더 완벽하게 이끌지 않았을까. 향연은 3년 연속 전석 매진에 공연 기간이 매우 짧다. 꼭 다시 한 번 그들과 마주하고 싶다. 그 때는 나 역시 사람들의 찌푸린 눈살에도 뜨겁게 터져나오려 발버둥치는 흥을 거리낌없이 마음껏 뱉어내고 싶다. "잘한다!"

조승현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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