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접어들면서 한껏 세상이 추워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사회도 여러 가지 논란으로 얼어붙고 있었다. 하지만 K리그는 얼어붙지 않은 채 오히려 뜨겁게 달궈졌다. 전북 현대와 FC 서울의 K리그 클래식 챔피언을 결정하는 경기를 하루 앞두고 서호정 축구전문기자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자 서호정

요즘 독자들은 가슴을 뻥 뚫어버리는 속 시원한 기사들을 원한다. 사람들은 그런 기사를 보고 속된 말로 ‘와 완전 사이다 기사네’라며 좋아요를 누르며 기사들을 퍼나른다.
하지만 그는 사이다를 많이 마시면 이빨이 썩는다며 다른 방향성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일회성에 가까운 기사를 쓰는 기자보다는 제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기사를 쓰고 싶어요. 그게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죠. 제 기사를 보고 독자들이 판단했으면 좋겠어요. 기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자들이 하는 일은 사회의 수면 위아래에서 벌어지는 사실들을 세상에 알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가치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기사를 통해 ‘오버’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고 특종을 잡아서 우쭐하며 겸손함을 잃어버리는 모습도 기자로서의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색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항상 현장에 나가는 이른 바 ‘현장 주의자’를 고집한다. “모든 기자들이 교육을 받을 때 가장 좋은 기사는 현장에서 직접 겪고 오는 거라고 받아요. 남에게 들은 건 그 과정에서 왜곡이 되거든요. 그러면 자기 확신이 사라지고 확신이 없는 과정에서 글을 쓰게 되면 불필요한 상상을 덧붙이게 되면서 기사가 소설이 돼버리죠. 사실 중계로 보고 기사를 쓰면 똑같이 화면만 보기 때문에 팬들과 접할 수 있는 범위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어요. 현장에 가야 시청자들과 접할 수 없는 라커룸이나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이야기들을 보충할 수 있기에 전 경기장에 갑니다”
 
축구경기장 위에 22명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현장에 가면 많은 관객들이 서로의 팀을 응원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를 기사로 전달하고 싶은 서호정 기자다. “축구는 단순히 보기엔 그라운드 위에서 11명대 11명의 선수가 부딪히는 스포츠지만 그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과 경기장에서 펼치는 모든 것에 사람이 관련돼있어요. 일종의 사람과 사람사이의 화학작용이 잘 이뤄질 때 하나의 조직체가 되고 우리가 주로 말하는 조직력이 나오면서 경기는 잘 진행될 수 있습니다. 물론 호날두나 메시와 같은 정말 조직을 초월하는 특별한 존재들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조직의 힘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게 축구고 스포츠의 모습이죠. 축구의 이런 모습에서 제가 사람을 바라보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을 취재해서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였을 때 축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 서호정은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을 통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처음에는 SNS상에서 많이들 호응해주시니까 처음엔 이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기자 서호정에 대한 관심이었어요(웃음). 축구에 관련된 이야기들, 기사로 통해서 알지 못하는 내용을 알고 싶었겠죠”
팬들도 서호정 기자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저는 기자가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자는 더 많이 보고 깊이 취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지 무조건 많이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축구 지식이 완벽하지 않거든요. 경기 중에 급박하다보면 선수기록을 잘못 적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점들을 팬들이 SNS를 통해서 알려주시죠. 그리고 기자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쌍방향의 피드백을 통해서 독자의 수준도 글을 쓰는 기자의 수준도 성장한다고 믿고 있어요”
 

     
▲ 출처: 서호정 기자 인스타그램

서호정과 축구의 상관관계

어릴 적 동네에서 모래를 휘날리며 친구들과 공놀이를 했던 기억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기자 서호정에게 축구는 간단히 말해 ‘좋아하는 것’이다. “축구가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거 같아요. 더 깊이 빠져들게 한 1998년 프랑스월드컵 같은 계기도 있었지만... 내가 ‘축구를 잘 알고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보기도 하고 연구도 하면서 스스로 공차본적도 있었죠” 이런 어릴 적 축구에 대한 기억이 사람 서호정을 기자 서호정으로 만들었다.
“제가 지금 일을 정말 일로만 받아들였다면 경제적인 문제나 육체적·정신적인 피로감 때문에 일찍 그만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일로 한다는 점이 힘든 순간을 잘 극복한 원동력이 된 거 같아요. 주변에 보면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잖아요. 주변 친구들도 저에게 기자라는 직업이 가장 맞는 일이라고 말해주니까 저는 참 행운아죠(웃음)”
하지만 때로는 좋아하는 걸 일로서 한다는 점의 대가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한국 축구의 좋은 모습만 기사로 쓸 순 없어요. 분명 나쁜 점들도 있기 때문에 취재를 하다보면 솔직히 힘들죠. 최근에 있었던 축구대표팀의 이란 원정 경기에서도 경기내용도 안 좋고 경기 후에도 여러 가지 논란 때문에 머리도 참 복잡했습니다” 2014년에 열렸던 브라질 월드컵을 취재할 때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알제리와의 경기가 고통스러웠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전 고비를 넘겼으니까 알제리를 잡고 16강으로 가는 결정적 발판을 마련할까 생각했는데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죠.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나올 때 졌다는 것 이상으로 표정이 너무 안 좋았어요.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명 축구대표팀도 잘못한 것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운 게 많았어요. 근데 월드컵에서 잘하는 나라를 보니깐 축구대표팀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도 잘 준비돼야 월드컵에서 결과를 가져오더라고요. 단지 돈만 많이 쓴다고 성적은 뒤따라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2002년 월드컵만 봐도 월드컵 시작부터 우리가 정말 다들 간절하게 응원했잖아요. 그게 결국 힘이 돼서 결과로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결과가 과정이 아쉬웠고 결과도 막상 그렇게 나오니까 저도 참 힘들었죠”
 
현재 한국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는 축구전문기자의 수는 극히 적다. 그만큼 힘들고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호정 기자의 최종 목표는 60살까지 경기장을 누비며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40살만 넘으면 현장에서 뛰는 게 아니라 사무실에서 편집을 담당하게 되는데 그런 구조도 깨보고 싶어요. 한편으론 제가 존경하는 도코 다케오시라는 기자가 있습니다. 그 기자는 월드컵을 8번 취재했는데 전 이제 월드컵 1번 취재했어요. 그만큼이나 취재를 하면 경험과 관록과 직관력이 있으니까 훨씬 저와 비교도 안되는 수준의 글을 쓰죠. 한국 축구계에도 그런 기자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한국축구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아무나 그 역할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아직은 그런 역할을 해주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현재 축구 기자들이 도전해야 될 일 인거 같아요. 쉽지 않겠죠.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서호정 기자는 우리 학교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예전부터 하석주 감독과의 인연이 있었어요. 하 감독이 ‘우리 학교 축구경기 분위기 괜찮으니까 잘한다’고 기사를 써달라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안에 경기장도 있고 학생들도 관계자들도 열정이 있으니까 분위기를 보고 가라’고 연락을 주셨어요. 직접 가서 보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한국 축구가 해결해야할 숙제 중에 하나가 미국이나 일본에서처럼 우리 소비자들이 학생일 때부터 직접 하면서 관전도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요즘엔 농구가 좀 자리를 잡아가는데 축구는 그러한 기반이 없어서 안타까운데 아주대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거 같아요.
솔직히 요즘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별로 학생들이 없죠. 연세대와 고려대는 정기전이 있어서 라이벌 의식이 있지만 그 외의 대학은 그렇지 못하죠. 솔직히 저도 제가 나온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예전에도 지금에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지금 아주대처럼 다른 대학들도 대학 축구경기에 열정을 쏟는다면 대학 축구 문화가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주대가 대학 축구의 문화를 선도하는 대학이 됐으면 좋겠네요“
 

     
▲ 출처: 서호정 기자 인스타그램

Q. 마지막 질문이다. 어떤 기자로 기억되고 싶은가?

A. 어떤 기자요? 그런 거창한 거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웃음). 사실 제가 최근에 고민하는 점은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얼마나 만족하고 이 일에 행복하고 있느냐도 중요한 거 같아요.
솔직히 사람들은 기자보다는 기사를 더 많이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언론인, 미디어관계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 정도의 사람들처럼 많이 언급되면 서호정이란 이름만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거니까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칼럼 앞에는 서호정의 000라는 이름이 붙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사를 보기 전에 누가 쓴 글인지 알 수가 있어요. 물론 저를 모르는 분들도 많이 있고 축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서호정이 쓴 글이구나 하고 들어오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해봤어요. ‘읽지도 않고 뒤로 가기를 눌러서 나갈까’아니면 ‘서호정이 썼으니까 읽어 봐야지’라면서 읽기 시작할까? 그 부분에서 저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중앙일보의 권석철 논설위원의 ‘권석척의 시시각각’이란 글을 보면 빼먹지 않고 읽어요. 그 분에 대한, 그 분이 썼던 글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축구에서도 제가 좀 그런 위치까지 가는 게 희망사항이고 최대한 많은 분들이 기레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기자로 생각해주신다면 그게 제 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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