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중국 어선이 우리나라 해경 경비정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의 중국 어선은 쇠파이프나 흉기들을 이용한 위협 행위로 악명이 높았지만 고의로 해경 경비정과 충돌해 침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정부의 외교방식이다. 사건 발생 31시간 후에야 보도 자료를 발표하고 주한중국대사관 총영사를 초치하며 늦장 대응 방식을 보였다. 이러한 조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대응방식이었지만, 이번 문제는 국가의 존엄과 주권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사건이었기에 정부의 무덤덤한 대응은 우리 국민을 실망에 빠뜨렸다.

현재 서해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천 척에 달하는 불법 조업 어선들로 인해 외교적인 문제는 물론 주변 수역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의 생존권조차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정부는 애매하고 임시방편의 대응방식만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중국의 눈치를 본 외교정책이 그 이유다. 중국어선의 위협적인 불법조업행위는 계속해서 거론된 문제다. 대응체계를 수립할 수 있는 시간과 국제사회를 통해서 문제를 공론화시킬 기회 모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정이 침몰한 현재까지 우리 정부의 저자세 외교는 계속돼고 있다.

소극적 늦장 대응 이후 우리나라는 국민의 비난 섞인 여론에 대중국 강경책을 선언했다. ▲경우에 따른 폭침 ▲총기사용 매뉴얼 개선 ▲함포사격 등이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강경책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문제다. 해당 강경책은 항상 거론된 사안이었으며 책임소재는 국가가 아닌 항상 현장 일선의 지휘관이나 작전대원들에게 있었다. 마땅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이들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고 안전마저도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인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강경책이 실효성 있게 작용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은 선행돼야 한다.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은 중국당국 관리의 문제다. 중국 측에서 우리나라와의 외교경색을 걱정하고 이를 위해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외교관계 악화를 걱정해 당연한 정책조차 눈치를 보며 하는 형국이 됐다. 명백한 매뉴얼과 당당한 입장표명이 없다면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 ▲사회질서 유지 ▲영토 방위의 세 가지 주된 역할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은 국가가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보기 힘들다. 국제적 역학관계에 휩쓸려 나라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바다 위 해경의 안전까지도 보장해주지 못했다.

해경 3005함 소속 경비정의 9명 대원의 생명은 단지 9명의 생명이 아니다. 그들은 불법 어선을 검거하는 해경의 자부심이자 우리나라 해상주권의 상징이다. 세계정세를 읽는 전략적 외교는 21세기 국가 대외정책의 근간이다. 그러나 저자세 외교는 전략적 외교와는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교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우리나라의 국민과 주권을 지키지 못한다면 일제강점기의 대한제국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강한 소신과 연속성을 가진 대외정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외교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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