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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말과 그들이 사는 세상
  • 이주열 기자
  • 승인 2018.03.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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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자들, 우민호, 2015.

부제 : 영화가 끝나면 알겠죠. 지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다는 걸

청불 영화 최초로 관객수 9백만을 돌파한 내부자들은 긴장감있는 시나리오와 통쾌한 결말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 일련의 줄거리는 우리 사회 실제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여지를 남긴다.

특정 국회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부장검사와 청와대 민정수석, 대기업 회장과 언론사 주필 그리고 깡패는 각기 다른 욕망을 쫓으며 영화의 줄거리를 이끌어간다. “같은 이유 아니겠어? 너나 나나 우리가 쫒는거라는 이강희 주간의 말은 이러한 욕망의 본질이 본래는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를 쫓는 이들 모습의 결과는 씻을 수 없는 장애와 죽음 그리고 타락이었다. 이들의 성공과 실패에는 대중의 시선과 말 그리고 행동이 함께했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닌다. 조국일보의 편집 책임을 맡고 있는 이 주간은 이를 활용하여 조국일보의 사설에 대중의 시선과 말이 집중되고 행동을 발생시키도록 유도했다.

부제 : 끝에 단어 3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 진다'

내부자들에서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은 언론이다. 이강희 주간이 있는 조국일보의 보도 방향에 의해 여론이 변화하고 그 방향에 따라 사건의 흐름도 달라진다.

말과 글은 곧 권력이다. 말과 글은 대중의 가치관과 사고를 지배하고 대중은 이에 따라 행동한다. 하얀 원고지와 반듯한 연필로 쓴 이 주간의 사설이 대중을 움직여 장필우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들고 깡패 안상구를 순식간에 살인청부업자이자 성폭행범으로 만들며 수천명의 검찰조직의 수사방향을 유도한다.

일련의 사건들은 비단 영화의 시나리오만이 아닌 현실이다. 지난 22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다. 이와 동시에 () 대우조선해양 사장 남상태 () 산업은행 회장 겸 행장 민유성 ()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의 사적인 관계가 밝혀지며 언론과 관직 그리고 기업 간의 유착관계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2011년 대우조선해양 경영난 당시 남상태 전 사장이 송희영 전 주필에게 남유럽 호화여행을 접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언론과 기업의 유착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다. 실제로 해당 시점에 송 전 주필이 조선일보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우호적인 내용의 사설을 수차례 게재한 사실이 밝혀졌다.

추후 밝혀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질적으로는 무산됐지만 당시 산업은행 행장이였던 민유성 전 행장은 리먼브라더스를 인수에 대한 계획을 밝혔었다. 이 시점 송 전 주필은 이번 사태를 통해 침체된 해외 투자은행을 인수한다면 추후에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대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이 반대를 했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비전문가인 송 전 주필이 관련 사설을 게재한 이유는 민 전 행장이 리먼브라더스 서울지점 대표 퇴직상여금으로 받은 약 6만주를 고려해보면 파악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기사나 사설은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을 선동한다. 영화상에서 이 주간은 대중을 혹은 돼지로 칭하며 대중을 정보에 대한 사리분별이 불가능하고 언론의존적인 대상으로 낙인찍는다. 즉 명망깊고 실력있는 언론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대중이 자신이 쓰는 사설과 조국일보의 편집방향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언론의 사전적 의미는 매체를 통해 사실을 알리고 해당 문제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다. 언론은 대중이 다가가기 어려운 정보를 보다 정확하고 중립적이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 자본과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비판적인 자세로 사회의 자정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들은 언론이 이러한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의견은 정의의 수호자이며 심판자다. 대중이 여러 사회적 불합리를 논하고 저항할 때도 언론은 항상 그 기본적인 바탕이 됐다. 이러한 점에서 정보제공을 하는 언론과 이를 주관하는 언론인들의 도덕적인 잣대는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 명확하고 엄격해야한다. 올바르고 건전한 방향성을 지닌 정보가 바탕이 되고 이를 통해 건설적인 토론이 진행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좀 더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주열 기자  julegoman@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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