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설악산 인근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품고 있는 황태마을이 있다. 청정 바람과 내리는 눈의 절묘한 조화로 황태가 숙성되는 한반도 유일의 장소이다. 이곳에서 지난 수년간 지인의 도움으로 내가 만난 단포선생의 취근 시 한 수를 동의를 얻고 소개해 올린다. 단포선생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데도 모를 정도다. 참으로 이야기의 내용이 깊고 미래를 예지하는 혜안의 능력이 있다.

 

황태가 익어가는 마을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아

물이 좋아 물을 찾는 사람아

 

자연은 자연이 가꾸나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 인가?

 

흙냄새 풀냄새 햇살 가득한 이곳에

바람들이 대화하고 물들이 사색하고

새들은 문안하고 나무들은 숨 쉰다

 

설악청정 황태마을아

뿜어라 순수한 원시의 향기를

남아라 오랫동안 태고의 자연으로

 

오늘도 그렇게 황태가 익어간다

 

2013 어느 날에, 단포

 

멋있는 글이다. 사실 이 마을에서 1대, 2대, 3대에 걸쳐 황태가 익어가면서 동시에 단포선생은 긴 세월의 인고를 인내하면서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황태의 익어감을 위해 시간의 길이를 견뎌내는 이분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감동이 솟구친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느끼지는 게 이분의 순수한 자연사랑과 황태사랑의 지극함이다.

이분이 한마디 건넨다.

도 교수, 잠깐 귀 좀 빌리세. 자네 학교가 어디라고 했지? 맞다, 아주대.

그런데 말이야, 아주대에서 노벨상 나온다.

아, 그렇습니까?

과학도 익어야 진짜가 되는 거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는데….. 내가 들은 과학 얘기 중 가장 정곡을 찌르는 듯 했다. 나는 머리가 멍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근처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물소리가 들려온다.

 

손목을 보니 시계의 초침이 서 있다. 감아준 태엽이 다 한 모양이다.

이곳은 시간이 정지하는 듯 하는 희한한 곳이다. 아니, 더 나아가 시간이 역으로 흐르는 그런 장소다.

단포선생의 장수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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