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민주화 열기에 발맞춘 대학언론

80-90년대의 대학언론은 민주화의 열기와 발맞추어 학내 여론 형성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학보는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 통합함으로써 언론의 역할을 다했다.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된 90년대 이전까지 대학언론 외부의 기성 언론이 다루기 민감한 사안에 비판, 동조의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고 이러한 점에서 기성언론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보아 대학언론이 민주화 실현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학 교정을 출입하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민주화와 노동이라는 키워드에 민감했던 시절 대학언론은 민주화 투쟁의 장으로써 학생들의 열기와 요구에 응하였으며 학우들은 이에 발맞춰 시대를 바꿔나갔다.

 

 
 

본 보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였다. 학우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은 아직까지도 학보의 축쇄판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선배님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본 보가 창간되어진 것은 1974년도로 학보를 통해 민주화의 전반적인 내용이 어떤식으로 전개되었는지 확인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학내 사안만을 다루고 있는 현재와는 달리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운 당시 대학언론은 사회적, 정치적인 이슈를 다뤘으며 이에 대한 민감도 역시 지금보다도 높았다. ▲4.19 민주화 운동 ▲5.18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당시에도 학보는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기성신문에서는 다루기 힘든 시위대의 행진 모습, 경찰이나 군인에 맞서는 저항의 모습들을 신문에 직접 담아내며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시각적으로 고발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둔감한 학우들에게 동참의 의사를 전했다.

50년대 4.19 현장에 대해 취재한 고려대신문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정부가 공식적인 집계수치를 꺼려할 때 학보 측은 부상당한 자교 학생의 ▲부상정도 ▲이름 ▲장소 ▲학과 ▲학년을상세하게 작성했다. 또한 관련 보도사안에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했던고 학생들의 행동이 정의롭고 바람직한 행동이었다는 조지훈 교수님의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라는 서평을 실어 학우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줬다.

한편 70년대, 80년대의 학보는 기성언론의 빈자리를 메꾸는 역할을 했다. 배부가 중지되거나 기사가 삭제되는 경우가 빈번했던 당시의 언론 상황에서는 학보도 예외가 아니였다. 숭실대 시보 473호를 확인하면 ‘신문이 화형당하고 편집국장이 강제구금 조치를 당했다’며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학보가 어떤 식으로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기사가 제시되어져 있다.

본격적으로 학보가 쓰여진 것이 40년대 후반 점을 감안해볼 경우 대학언론은 민주화와 발맞춰 발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라는 키워드가 부재한 지금의 학보는 ‘대학언론의 위기’라고 불릴 만큼의 위태한 상황을 겪고 있다. 과거만큼의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가 없는 것도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이라고 지적되어지지만 더욱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정체성의 부재’다. 민주화 운동이 성행했던 과거에 비하여 대학언론은 자극적이거나 소통을 이끌어낼 소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대의 권리를 찾기위한 학보의 움직임    

민주화를 바라보는 시선 외에도 학보는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남달랐다. 지금부터 80년대 두가지 노동파업을 바라보는 동아일보와 아주대학보의 관점을 비교 분석해보겠다.

88년도에 현대중공업 파업투쟁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업무환경에 대한 처우개선을 목적으로 파업을 시작했다. 평온하게 진행되던 파업은 회사 측의 테러를 발단으로 급진전되었다. 투쟁의 확산을 우려한 정부는 육·해·공 1만 4천의 병력을 동원하여 대규모 작전으로 파업을 강제해산시켰다. 이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는 노동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기물들을 파손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를 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현대중공업의 손실이 막심하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기성신문이 약자를 비난하고 강자를 옹호할 때 아주대 학보는 약자의 권익을 대변했다. 아주대 학보는 190호 사설 ‘무엇이 반민주인가?’에서“언론은 지금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며 현대중공업 파업을 왜곡보도하는 언론을 비판했다. 또한“오히려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야기시키는 측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을 폭력으로 탄압하는 현 노태우정권이다”며 노태우정부의 시위탄압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와 비슷하게 84년도에 있었던 ‘대우어패럴 노동쟁의’에서도 학보와 기성신문의 관점차이를 볼 수 있다. 대우어패럴은 대우그룹 계열의 의류 봉제 수출 회사였다. 규모가 큰 회사였음에도 임금 및 근로 조건이 열악하여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했다. 회사는 노조구성원들을 납치감금 및 폭행을 했고 이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되자 폭력배 2백여명과 사복경찰을 동원해 벽돌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노조원들을 강제해산시켰다.

동아일보는 85년 사설에서 폭력시위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폭력시위를 부각시켜 노동자들의 아픔을 묵살했다. 또한 노동자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세력이라고 몰아갔다. 이에 반해 학보는 129호 사설에서 고도성장이라는 슬로건 뒤에서 희생되어가는 노동자들의 외침을 전달했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화려한 성장 뒤에선 소시민들의 희생이 어두운 이면이 함께했다. 정권을 잡은 이들은 노동자들을 ▲수출역군 ▲산업전사 ▲고도성장의 기수 등으로 표현하며 화려한 면만을 부각했다. 권리를 되찾기 위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약자를 악자로 왜곡했다. 학보는 기성신문이 권력에 편승하여 보도하는 것과 달리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런 입장을 취한 것에 대해 검열은 없었냐는 질문에 당시 학보사 편집장이었던 홍한표(경영·86) 동문은 “당시 당국의 직접적인 제재는 없었지만 학교 측에서 눈치를 준 것은 사실이다”라며“그럼에도 모두가 침묵할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학언론의 현재와 의의

한국사회와 대학가에 불었던 민주화에 열풍은 대학언론 전성기의 밑바탕이 됐고 뒤이어 빠른 경제 성장의 이면에 가려져 소외된 소상공인과 노동자들을 다루며 사회 문제로 부각시키는데 앞장섰던 대학언론사들은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90년대 들어서면서 위기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는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가장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원인은 민주화를 대체할 수 있을만한 키워드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언론의 부상을 만들어낸 민주화는 대학언론의 위기 또한 만들어냈다. 민주화는 단순히 대학가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여론을 하나로 수렴할 수 있는 주요 이슈였다. 당시 대학언론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지성인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통해 지지층을 공고히 하고 활동영역을 넓히며 주요 역할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민주화의 염원이 관철되는 순간부터 대학언론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와 같은 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하고 염원할만한 이슈를 찾지 못한 대학언론은 동시에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매체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과거의 중요성을 점차 상실해갔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대학언론의 전성기 시기에도 신문의 내용에 대한 탄압 혹은 검열 등의 심각한 문제들은 존재했다. 즉 오늘날 말하는 대학언론의 위기는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위기의 속성이 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대학언론은 대학이라는 집단에서 권력 혹은 경제력에 휘둘리지 않고 사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 있음에 그 필요성은 건제하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언론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이는 최근 겪었던 경험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국정교과서를 다뤘던 본보 제 594호가 발행되자 학보사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강남에 살고 있는 모 선배라고 설명한 그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학보의 입장에 대해 “너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바뀔 것은 없다”며 거친 말을 쏟아 냈다.

 

아주대 학보사 기자들이 밤새 마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주대 학보사 기자들이 밤새 마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대학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꼭 선배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 학보의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를 분노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반대로 누군가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이 거대한 파급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전체를 급격히 변화시킬 힘을 가지지 못할지라도 침묵하지 않고 올곧은 소리를 할 수 있는 누군가는 언제나 필요하다.

민주화를 처음 말하던 시기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처음으로 언급할 때에도 그 변화가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던 사람은 없었다. 거대한 성벽들도 작은 벽돌이 모여야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의 목소리가 건강한 학교와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작은 벽돌로써 의미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학언론은, 아주대학보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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