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베르트는 현대수학을 정립하며, 완벽한 수학, 즉 완전히 논리적이고 모든 것이 증명 가능한 수학을 꿈꿨다. 수학의 논리를 차근차근, 견고하게 재정립하면서 힐베르트의 꿈은 정말로 실현될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홀연 괴델이라는 천재가 등장했다. 그는 완전히 모순이 없는 공리계는 존재하지 않음을, 즉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반드시 존재함을 증명하고 만다. 힐베르트의 꿈이었던 완전한 수학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힐베르트는 좌절하지 않고,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는 수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명제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힐베르트가 현대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 명제라고 생각한 초한기수 가설이 증명 불가능함을 또 한번 괴델이 증명해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 완벽한 것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꿈꾼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런 완벽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인 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철학은 수학과는 다르다. 모두가 공유하는 완벽한 언어로 이루어지는 논리적 논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완벽한 삶의 지향점이란 것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 여기에서도 수학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힐베르트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힐베르트는 완전한 수학을 주창하면서, 23가지 중요한 문제를 정해 발표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수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당대 수학의 흐름을 결정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23가지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괴델이 증명한 초한기수 가설이었다. 초한기수 가설의 증명이 불가능하다면 그 가설은 쓸모 없는 가설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초한기수 가설은 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 새로운 생각과 시도, 수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쟁 자체가 수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나에겐 마찬가지인 것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살아야 옳고, 어떻게 살아야 그른 것인지는 누구도 정의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이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논쟁하는 것일까? 바로 그 논쟁 자체가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끝없이 고민하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가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야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힐베트르가 당대 최고의 수학자로 평가받는 것과 같이, 우리도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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