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본 것이 기억난다.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남들과 달리 70대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거꾸로 먹어 점차 젊어지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남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이를 먹어 가면서 주인공이 겪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일 등을 그린 수작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일은 벌어질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간난 애로 태어나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자라 건장한 청년이 되고 이후에는 서서히 노화 과정을 거치면서 중장년을 지나 노년에 죽게 된다. 이는 마치 뉴턴의 ‘중력의 법칙’처럼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자연 수명은 1백20세 정도라고 한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천수를 다하면 1백20살까지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 보다 훨씬 전에 죽는다. ▲당뇨병 ▲심장병 ▲암 ▲치매 등 나이가 들면서 노인성 질환에 걸려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 현재의 의학이나 과학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이런 질병들이 정복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기 때문에 수명 120세는 결코 꿈이 아닌 현실로 곧 닥칠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수명을 결정하는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핵 안에 염색체라는 구조가 있다. 염색체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DNA가 모여 있는 장소이다. 한 개의 세포가 세포분열을 통해 2개의 딸세포를 만들 때 염색체 안의 DNA는 복제가 되어 딸세포에게 사본이 각각 전달된다. 그런데 DNA는 선형의 이중나선 구조여서 사본을 만들 때 염색체 양 끝부분인 ‘텔로미어’는 복제가 되지 못하고 소실된다.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점차 짧아지므로 세포분열을 많이 하면 할수록 염색체의 길이는 더욱 짧아져 한계치 이하로 짧아지면서 세포는 더 이상 세포분열을 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염색체의 길이가 생물학적 시계로 작동하여 우리가 죽을 때를 알려준다.

복제 양 돌리나 복제 견 스누피 등은 이미 성공했고 이 기술을 이용하면 복제 인간의 제작도 현재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바로 염색체의 길이 형태로 이미 각인된 유전적 나이이다. 돌리도 태어난 후 조숙 증세가 와서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만약 내가 키우던 애완견이 15살 때 죽어서 복제 견을 만들었을 때 새로 태어난 복제 강아지의 몸은 비록 어리지만 이미 죽은 개의 유전적 나이를 물려받아 태어나기 때문에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한번 각인된 유전적 나이는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하면 벤자민 버튼처럼 유전적 시계를 되돌릴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텔로미어의 길이를 증가시키거나 또는 차선책으로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면 된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가 활발하게 일을 하면 염색체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는다. 실제로 모델 생물인 꼬마 선충을 이용하여 텔로머라제의 기능을 유전공학적으로 향상시켰더니 수명이 30% 정도 증가하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사람의 경우 우리 몸에 나쁘다고 알려진 것들 대부분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짧게 만든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혈구의 텔로미어는 일 년에 평균 25~27 염기쌍 정도로 손실되는 데 하루에 한 갑 이상의 담배를 40년 이상 피우면 여기에 추가적으로 5개 염기쌍이 더 손실된다고 한다. 이는 약 7.4년의 수명에 해당한다. 달리 말하면,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평균 7.4년을 일찍 죽는다는 말이다. 유사하게 비만은 8.8년의 수명 단축에 기여한다. ▲과식 ▲불균형한 식사 ▲스트레스 등도 모두 텔로미어의 길이를 짧게 만들며 ▲균형 잡힌 식사 ▲소식 ▲운동 등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춘다.

우리가 텔로미어의 길이를 꼬마 선충처럼 인공적으로 증가시킬 수는 없지만 길이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면 노화를 지연시키고 수명을 연장할 수는 있다. PCR 방법으로 백혈구의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하면 현재 내 몸의 유전적 나이를 계산할 수 있고 꾸준한 소식과 운동을 통해 내 몸의 유전적 시계가 국방부 시계처럼 천천히 가게 할 수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를 보면서 필자의 뇌리에 잠시 스쳐 지나간 단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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