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녀를 둔 홍은선(41) 씨는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 구독을 해지했다. 홍 씨는 “거실에서 자녀들과 넷플릭스를 함께 보는데 동성끼리 키스하는 등 동성애가 들어간 장면이 노출돼 당황했다”며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자녀가 동성애를 묘사한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며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1년 기준 넷플릭스 시리즈의 주인공 중 성소수자 비율은 35.8%로 나타났다.

PC의 등장과 그 의미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는 최근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단어다. 인터넷에서 ‘PC충’ 혹은 ‘프로불편러’ 같은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PC의 기본 취지는 논란이 될 만한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 ▲민족 ▲성 ▲언어 ▲인종 ▲종교 등으로 인한 차별을 포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운동이다. PC는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이나 편견 없는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미국 사회에서 시작됐다. 박구병(사학) 교수는 “PC는 대상이 누구이든 배려하는 표현은 필요하다는 것을 기조로 한다”고 전했다.

아직 명확하지 않은 PC의 정의

그러나 PC 용어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Political Correctness’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Correctness’의 사전적 의미에서 올바름이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박 교수는 “한국어에서 '올바르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에 ‘적절한’ 또는 ‘정확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알맞다”며 “PC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며 사회적 합의와 문화적 관행이 진보하는 현상이다”고 전했다.

 

PC 용어의 위험성

용어의 모호함과는 별개로 PC라는 단어 자체가 일상 속 차별을 시정하는 행위를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찍고 이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김한상(사회)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반대 진영에서 '저 사람들은 PC 주의자야'라고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전했다. 이렇듯 PC라는 단어 자체의 기반이 혐오를 시정하려는 유난 떠는 사람들로 규정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단어의 위험성과 별개로 이미 PC는 우리 삶 전반에 녹아들기 시작했고 교육과 미디어를 포함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PC의 영향력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산업계와 PC

스마트폰과 온라인 소통의 증가로 PC 열풍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콘텐츠 업계에서는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게임 등에서 PC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문화콘텐츠에 PC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대중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디즈니는 영화 ‘인어공주’의 에리엘 역으로 흑인 배우인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원작의 인어공주는 덴마크 출신의 빨간 머리를 가진 백인 여성으로 묘사돼 있다. 이에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을 무리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존 팬들의 기대와 요구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회에 흐름에 맞게 흑인 인어공주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대중성을 간과해 소비자들의 반감을 산 것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디즈니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밝혔지만 캐스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오히려 인종차별이라며 문제 삼았다. 무리하게 캐릭터 설정을 바꾸며 기존 팬들을 실망시킨 것으로 모자라 이에 반대하는 팬들을 차별주의자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권예지(정외·1) 학우는 “겨울왕국처럼 PC 사상이 있는 내용과 조화를 이루면 대중들의 공감을 유도할 수 있다”며 디즈니의 과도한 설정 변경을 지적했다.

PC의 바람은 게임까지

PC의 바람은 게임까지 넘어갔다. EA 스포츠의 게임 FC 24에서는 남녀 혼성팀 구성이 가능한데 남자 축구선수 킬리안 음바페와 여자 축구선수 서맨사 커의 능력치가 91로 동일하게 설정돼 논란이 됐다. 평소 이 게임을 즐겨하는 최동학(정외·2) 학우는 “두 선수는 각 리그에서 우수한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이지만 성별에 따른 실제 신체 능력의 차이가 있는데 한 게임에서 같은 능력치를 가지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며 “현실 축구를 근간으로 한 기존 게임을 플레이해오던 유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는 게임 캐릭터 바루스의 성 정체성을 변경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바루스는 이성애자에서 동성애자로 설정이 변경돼 이용자들의 반발을 샀다. 해당 캐릭터를 즐겨하던 박준식(23) 씨는 “게임사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설정을 무리하게 변경해서 캐릭터를 강탈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한상(사회) 교수는 “본래의 스토리에서 캐릭터의 성별을 변경하는 것은 대중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방식이다”며 “화제성과 수익성을 고려해서 만든 결국 자본이 이끄는 데로 간 것이다”고 설명했다.

PC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기업

과거 디즈니 영화는 백인 중심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유색인종은 미개한 인물로 묘사하는 등의 인종주의적 행보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며 영화 ‘알라딘’과 ‘토이스토리4’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 박 교수는 “디즈니 영화가 과거에는 인종과 젠더 측면에서 또 다른 차별을 재생산하는데 일조했지만 점차 주인공이 백인 남성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디즈니는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인을 비하하는 ‘Jap’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묘사를 한 인종차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현대에 들어서 변화를 준들 진정성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이렇듯 문화산업계가 다른 산업계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이유는 더 많은 고객을 포섭하는 것에 있다. 실제로 다국적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인 창조적 예술가 협회(Creative Artists Agency)는 영화 출연진의 인종이 다양할수록 흥행 수익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PC를 위한 PC인가

PC의 확산은 문화계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성별 그리고 성적 지향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스토리의 개연성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인어공주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인종 인어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뜬금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화를 관람한 최 학우는 “PC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담는 작품의 공급 방식과 퀄리티가 아쉽다”며 “언제부턴가 영화의 감동과 재미보다 특정 사상이 강조된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치적 올바름의 작품 개입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문화계에서는 정치적 올바름과 스토리 완성도 사이의 조화가 중요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문화계와 관객 모두 이러한 가치들을 존중하고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PC를 회복해야 할 때

PC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방지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흐름을 의미한다. 박 교수는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의 취지 자체는 평등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부정적인 요소는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의 취지가 아닌 그 취지를 구현하는 방법에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기업들은 PC를 경영 전략으로 활용하며 보여주기 정도에 그치고 소비자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PC의 본래 가치는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 보장과 다양성 존중에 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이 상업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거나 소비자에게 강요되는 경우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PC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PC의 본래 의미와 취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PC는 특정한 문화나 사상을 강요하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각자가 PC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절한 활용 방안에 대해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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