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wrtn>
<일러스트=wrtn>

 

1862년 11월 21일 파리 고등법원에서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과 사진기의 발달이 맞물려 미술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당대 유행하던 화풍은 눈에 보이는 형상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이었다. 화가들은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며 카메라와 다르지 않은 노동으로 부를 축적했다. 당시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진행한 미술 교육에서도 화가들의 주관적 의도가 배제된 획일적인 화풍을 강요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화풍을 고집하던 화가들은 그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모습을 정밀히 담아내는 사진기의 등장 이후 설 자리를 잃었다.

화가들은 사진기로 대체할 수 없는 창작을 하기 위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했다. 결국 사진기의 등장은 오히려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화가들은 사진으로 담기 힘든 추상적인 개념을 작품에 담아내며 사진과 그림을 차별화 해갔다. 형식 면에서도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순수조형 요소로 그림을 구성하거나 빛과 색을 과장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계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했기에 화가라는 직업의 명맥은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AI가 등장한 현재 또 다른 미술계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입력한 대로 빠르게 그림이 출력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화가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미래에셋증권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중화권 게임사들은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 기사의 일러스트 또한 생성형 AI가 몇 초 만에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눈치챘는가.

하지만 위기로 여겨지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미술계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인간 화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성형 AI와의 차별화가 필수적이고 그 전략으로서 ‘의미 부여’ 행위가 수반돼야 한다. 살아온 배경이나 경험에 의해 생겨난 개개인만의 정체성과 의미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사진 작품이 예술로서 인정받게 된 이유 또한 사진가가 사진에 의미를 담아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진기의 등장에 화풍의 변화를 꾀했던 화가는 살아남았듯 AI의 등장에도 정형화된 틀을 깨고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는다면 대체되지 않을 수 있다. 예술의 발전은 위기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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