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호의 첫인상인 1면 ‘찬란한 가을을 빛낸 연합축제 AU:tumm’ 기사에는 일차별 축제 운영 내용과 학우들의 인터뷰 그리고 분위기가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예년과 달리 이번 축제는 노천극장 공사로 인해 가온 마당에서 진행됐음에도 14개 팀의 풍요롭고 다양한 무대와 초대 가수의 공연으로 성황리에 끝났다. 대학의 젊음과 활기를 더한 기사였다. 공연 환경이 이전과 달라 내심 우려를 하기도 했지만 “즐길 수 있었다”는 학우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신체의 불편함이 있는 학우들도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베리어 프리 공간이 마련됐었는지 궁금해지는 기사였다. 특히 이번 호에 교내 축제와 행사에 관한 기사가 실려 정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나?’하는 생각을 시작으로 학보의 첫 장을 넘겼다.

필자는 에너지센터 1층 여자 화장실이 작은 공간임에도 곳곳에 양동이가 놓여있어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욱 2면의 건물 누수를 소재로 한 기사가 반가웠다. 기사에 의하면 남제관과 용지관을 비롯한 기숙사 건물과 더불어 성호관과 학군단까지 적지 않은 건물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노후화된 건물의 보수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누수뿐 아니라 연식이 오래된 원천관과 화공실험동 등의 건물은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아 계단으로만 건물을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연히 이동이 제한된다. 연식이 오래됐다는 것은 그만큼 아주대학교가 깊은 역사가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학교는 불편을 겪는 학우들의 목소리를 실현 가능 범위에서 수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학생이 있어야 학교도 운영될 수 있기 때문에.

학보를 구성하는 여러 면들 중에서도 매번 기대하는 기사가 있다. 사회면의 ‘아주 무해해’다. 봉사를 체험하는 이유는 각각 다를 수 있지만 학보를 읽는 독자에게 직접 경험한 봉사의 이야기와 사회의 문제점을 연결해 작성하는 기사는 특히 필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에 도달했지만 아직까지 노화로 인한 치매와 정서적 고립에 대한 논의는 대두되지 못한듯하다. 노인 고립과 치매 문제에 대한 부족한 관심은 당장 자신의 삶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때문에 타인에 대한 정서적 공감 결여가 당연시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노인 고립 문제는 자신의 가족이 겪을 수도 있고 하물며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간보호센터의 역할은 단순 치매 예방 차원을 넘어 고독을 경험하는 어르신들의 커뮤니티 형성까지도 이룰 수 있다. 서로의 건강과 안위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기사를 읽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능숙하기보다는 천천히 다가가려 한 유지민 기자님의 하루가 더욱 빛나 보여 필자 또한 봉사의 참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또한 고령 사회 속 필자를 포함한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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