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4를 보면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말씀’은 ‘로고스’라고 한다. 이 로고스는 그 어원상 '말'을 뜻하며 곧 말해질 수 있는 것 진리를 의미한다. 이를 철학적 표현을 제외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은 진리를 바탕으로 대화를 해나가며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 로고스가 공식화된 명칭으로는 기업이나 단체가 개최하는 ‘컨퍼런스’가 있다. ‘학술 컨퍼런스’는 학계에 대한 학자들의 이야기로 이뤄진다. 또 다른 로고스의 형식으로는 청중이 참가해 사회자의 도움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는 ‘포럼’이 있고 전문인들이 특정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가 있다. 이런 모임은 그런 말들의 모이는 광장이며 로고스의 꽃이다. 그렇기에 참여자들은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말하고자 노력하며 서로를 설득하고 소통하고자 진심을 다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직위를 넘어 비교적 가볍게 로고스를 나누는 대표적인 자리가 있으니 바로 ‘대담회’다. 이런 대담회는 검증 과정에 가깝고 일문일답으로 이뤄지는 다른 로고스의 장과 달리 대담자의 ‘진심을 다하는 자세’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목적이 된다.

보통 대담회에서의 참여자는 부담 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리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유념할 것은 ‘대담자’만은 대담회를 ‘부담 없이’ 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담회가 아무리 가벼운 행사라 여겨져도 대담자로 초대된 이상 ‘대담자’는 존중을 갖추고 나와야 한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고민하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본인 스스로 파악해 소통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포괄적인 답변만 반복함으로써 참여자들에게 논리의 빈약함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준비가 부족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담회는 가볍지만 동시에 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참가자의 수준에 맞춰 들어둘 만한 수준 높은 ‘분별’과 ‘이성’적인 말 즉 로고스가 나올 수 있게 해야 했다.

하지만 근래 교내에서 이뤄진 대담회는 이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하긴 해야 하는데 떠오르는 방법은 없고. 그냥 “대담회나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대담자도 참여자도 긴장이 없고 진정성 없이 개최되는 대담회. 우리는 어디서 로고스를 찾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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