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을 떠난 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였느냐 한다면 평범하고 익숙한 삶으로부터의 도망이었다. 매일 아침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등교하고 하교하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준비하고. 지겹도록 익숙한 것으로부터 오는 지루함에서의 탈출을 꿈꿨다. 나는 내가 프랑스에 산다면 파리에서 지낸다면 왠지 모르게 특별한 일이 마구 생기고 하루하루가 즐거우며 내가 더 멋지고 근사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기숙사 계약 문제가 있었고 기숙사로 이사하는 날에도 ça depend(싸데펑: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뜻의 프랑스어)의 나라답게 제시간에 입사하지 못했다. 떠버린 시간에 마트로 장을 보러 갔는데 짐을 풀지 못했으므로 에코백 대신 얇은 종이봉투 하나를 챙겼다. 간단하게 산다고 샀지만 무거운 물과 우유는 곧 종이봉투를 찢었고 덕분에 나는 음식들을 한 아름 안고 조심조심 돌아가야 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사는 건 어디에서나 똑같네” “내가 상상했던 프랑스와 파리는 무거운 물과 우유를 지고 오느라 손가락이 아픈 삶이 아니었는데” “결국 사는 건 어디에서나 무척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동시에 힘든 일이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도 나의 교환학생 일상은 평탄치 않았다. 문과생이 영어로 파이썬을 배워야 했고 여전히 과제와 팀플과 시험을 준비해야 했으며 어떤 날에는 새벽 2시에 응급실에 가는 일도 있었다. 응급실에 갔다 온 후 일주일간 회복하며 생각했다 “그 아무리 좋다는 프랑스 파리여도 움직이고 행동하여 ‘내’가 바뀌지 않으면 달라질 것이 없겠구나” 그동안은 익숙하지 않은 수업을 어설피 공부하느라 제대로 진도를 따라가지도 놀지도 못했는데 남은 시간 동안에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는 적극적으로 여행 일정과 약속을 잡으며 파리는 물론 프랑스 소도시와 근처 국가를 여행했고, 그러면서 ▲교환학생 ▲유학생 ▲장기여행자 ▲파리에서 사는 분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상상했던 정말로 근사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친구에게 편지를 썼을 때 이런 이야기를 담았다.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도 이렇게 힘들 수 있었던 것처럼 반대로 수원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항상 익숙한 곳에서 반복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상황과 배경에 따라서도 분명 성장하고 변화하지만 그렇게 변화가 정말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시작은 나의 마음가짐과 동반되는 행동 그러니까 결국 ‘나’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귀국한 지금 나는 수원에서 정말로 행복하느냐고? 물론 힘들지만 또 가끔씩 행복하며 환상에서 벗어나 좀 더 성실하게 삶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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