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다음 영화>
<출처=다음 영화>

우리는 흔히 청소년을 미성숙하기에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미성숙한 청소년을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사회의 필수 덕목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통제뿐일까? 영화 코러스는 우리에게 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 코러스에서 등장하는 시골 마을의 작은 기숙 학교 ‘퐁드레탕’에서는 학생들을 체벌과 독방 보내기 등 통제에 기반한 교육을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통제에도 학생들의 반항은 점점 거세지고 더 많은 사고를 친다. 퐁드레탕에 변화를 불러온 주체는 새로 부임한 교사 마티유다. 그는 학생들을 통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다른 교사들과 달리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다. 또한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확인해 합창을 제안한다. 합창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학생 개개인의 음악적 특성을 발견하고 알맞은 역할을 부여하며 학생들이 성숙한 인격체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 학생들은 합창을 통해 마음을 열고 각자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마티유가 등장하기 전 영화 초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에게 바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체벌과 규제를 가해왔다. 물론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통해 과거처럼 직접적인 체벌은 사라졌지만 학생다움을 강조하는 암묵적인 통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학생다운 말투와 옷차림 그리고 머리 스타일 등 기초적인 통제부터 시작해 대학 진학률 80%라는 수치를 들이밀며 대학 진학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까지 여전히 수많은 통제가 학생들을 짓누른다.

영화는 우리 사회를 향해 청소년을 통제 대상으로 대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교장은 늘상 잘못에 합당한 체벌을 부여할 것을 외치며 처벌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이로 인해 통제받는 학생들은 미성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상태에 머물러 비뚤어진다. 그렇기에 퐁드레탕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티유의 부임 이후 학생들이 인격적 대우를 받고 통제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자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운동을 즐기는 등 학교는 행복한 공간으로 변화했다.

긍정적 결말을 맞는 영화와는 달리 최근들어 우리 사회는 과거로 역행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체벌 금지로 인해 학생들의 일탈이 증가하고 학내질서 문란 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학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학생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코러스의 마티유는 학생의 일탈로 인해 해고의 위기에 놓인 상황 속에서 교장에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에 걸맞는 처벌을 내리는 작용 반작용식 교육이 아닌 사랑의 돌봄이다”는 말을 남기고 해고 당한다. 그의 말처럼 통제와 체벌을 강화하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길을 다시 걸어서는 안된다. 사랑에 기반한 관심과 돌봄만이 미성숙한 청소년을 성숙하게 성장시키고 바른길로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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