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 전성 시대

 

한 번쯤 ‘힙하다’나 ’힙스터’와 같은 단어를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힙'(hip)이란 단어는 최근 들어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형용사로 쓰이며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이용한 ‘힙하다’라는 단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20대의 SNS를 중심으로 최근 들어 확산됐다. 처음에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옷을 잘 입는 사람 등을 의미했으나 이후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며 예능이나 드라마를 넘어 뉴스에도 등장하는 대중적인 단어로 발돋움했다.

힙스터’의 탄생과 변화

‘힙스터’ 문화가 만들어지던 1940년대 당시 제 2차 세계대전과 그로 인한 사회 전반에 불확실성이 확산했다. 종전 이후 다가온 산업화로 인해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자유와 개체성이 박탈됐다고 느낀 청년층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 의식이 커졌다. 특히 이들 중 백인들은 반항적인 행태의 일환으로 대중문화를 거부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렇게 하위문화를 지향하며 주류 문화에 편승하는 것을 거부한 백인은 흑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재즈를 향유하고 흑인의 외양을 따라 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을 일컫기 위해 ‘힙스터’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이렇게 수십 년 전에 등장한 힙스터 문화는 1990년대를 지나 주류 문화보다 인디 록 음악과 독립영화 등을 선호하는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장을 거쳤다. 2012년 CBS의 ‘Hipster olympics’ 기사에 따르면 당시 힙스터는 얼터너티브 뮤직과 인디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으며 로컬 맥주를 마시고 라디오를 즐겨 듣고 자전거를 타는 중산층 혹은 상류층의 젊은이로 흔히 묘사된다. 이후 2000년대 후반 문화의 다양화와 세계화를 통해 힙스터 문화는 주류문화와 갈등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선구해 창조하는 ‘뉴힙스터’라는 단어를 통해 완전한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발표한 Sage Journals의 ‘Late-modern hipsters’ 논문에 따르면 이들은 전반적으로 좌파적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인문학을 공부하고 카페와 바 그리고 음악이나 패션 업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변화하지만 항상 존재해 왔던 ‘힙스터’

우리나라 역시 과거부터 주류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본인만의 개성을 찾아가기 위한 소수의 움직임은 꾸준히 존재했다. X세대로 일컫는 청년층의 독특한 문화를 거쳐 반항적인 오렌지족과 지금의 ‘힙스터’까지 이러한 움직임은 세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보편성보다 개성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 발맞춰 힙스터 문화는 어느새 ‘힙하다’는 개념을 통해 그 범위를 확장했다. 기성세대 문화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공통적인 과정을 거쳐 힙스터는 쏟아지는 대중문화의 범람 속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의 아이콘으로 발돋움한것이다. 기존 주류 문화의 틀 안에서도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를 전파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본인만이 추구하는 개성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박태원(21) 씨는 힙스터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원두를 사용해 만든 커피를 마신 박 씨는 그가 좋아하는 그런지(1990년대 얼터너티브락) 스타일의 옷을 입고 외출에 나선다. 그의 옷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브랜드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어 남들과 비슷한 브랜드를 구매하기 싫었던 그의 취향이 보이듯 해외에서 구매한 헤드셋을 통해 미국 본토 흑인 힙합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는다. 남들과 차별점을 두며 살아가는 모습에 자기 만족한 박씨는 자신이 추구하는 취향과 가치를 SNS에 공유한다. 이렇듯 힙스터들은 전반적인 모든 의식주에 걸쳐 그들만의 철학이 담긴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표출한다. 이에 대해 패션 매거진 디렉터 김성철 씨는 “힙스터들은 자신을 투영해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패션을 중심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SNS에 업로드함으로써 개성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한다”고 밝혔다

힙스터’와 ‘보급화’ 공존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힙스터가 주로 주류문화를 소비하는 대다수에게도 영감을 주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힙스터에게 인기를 얻고 힙스터를 자처한 ‘혁오밴드’가 공중파 출연을 통해 기존 밴드 장르와 차별점을 둔 다른 색다른 음악을 보여주며 큰 유명세를 얻었던 것이 그 예시다. 패션 또한 예외는 아니다. 패션 스타일 컨설팅 플랫폼을 운영하는 박지원(문콘·4) 학우는 “힙스터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이 미디어 매체를 통한 전파를 거치며 주류 문화와 융합된 형태의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이러한 힙스터 문화가 또 하나의 트렌드로 만들어지는 흐름을 이용해 기업도 등한시하던 힙스터를 이용한 마케팅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힙스터 키워드를 입력하면 ‘힙스터 룩 완성템' ‘가을 힙스터 코디’ 등의 게시물이 검색 되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소비를 통한 주류 문화와 구별화를 꾀하는 힙스터의 특징을 읽은 기업들은 앞다퉈 힙스터 문화의 차별성을 주류 문화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힙하다는 용어가 긍정적인 뉘앙스로 비춰지는 것을 확인한 의류 기업들은 힙스터 또한 긍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유행에 따라가지 않는 독특한 취향 탓에 아웃사이더로 치부되던 힙스터들은 트렌드 세터로 급부상했다.

힙스터’와 자기 우월감

다만 이러한 보급화로 인해 힙스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2011년에 뉴욕 저널 ‘N+1’이 발간한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는 “최신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대중의 흐름과는 거리를 두려는 이들의 문화는 첨단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하위문화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구별 짓기에 예민한 부유한 중산층의 소비 문화일 뿐이다”라고 비판의 시각을 밝혔다.  ‘힙스터에 주의하라’는 힙스터 현상의 역사와 그것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의미를 다루는 최초의 보고서로 힙스터 문화 변질에 대한 우려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을 추구하기 위해 주류 문화와 멀어진 기존 힙스터 문화가 아닌 주류문화와 멀어지기 위해 힙스터 문화를 향유하는 소위 ‘워너비 힙스터’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 때문에 개인의 주관 없이 맹목적으로 남의 취향을 따라 한다는 인식이 퍼졌으며 장르의 선구자라고 인식되던 힙스터들은 비난거리로 전락했다. 비단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힙스터 같다’라는 말이 ‘홍대병’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통해 부정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홍대병’은 문화적인 깊이를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다름’만을 추구하고 대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자기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이는 스노비즘(과시나 허세를 위해 얕게 파고드는 허영을 나타내는 용어)와도 일맥상통한다.

힙스터’의 절충인가 모순인가

주류문화의 대척점에 있던 힙스터 문화가 점차 절충점을 찾아가자 ‘힙스터 정신’ 또한 절충점을 찾았다. 개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몰개성을 불러오는 모순은 곧 현대 사회의 힙스터의 역설을 보여준다. ‘힙스터에 주의하라’에 따르면 ‘힙스터가 추구하는 지적 우월감은 다른 하위문화의 일원이 지적 속물·수집가·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애호가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이미 주류인 하위문화를 저항 없이 표방한다는 모순성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했다.

홍대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수한(24) 씨는 “겉만 봐선 주류를 거부하는 전통 힙스터인지 맹목적으로 양식만 흉내 내는 ‘워너비힙스터’인지 구분할 수 없다”며 “2000년대와 달리 지금의 힙스터는 공유하는 의식이 없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전파되는 ‘힙스터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면 리스트의 문제들은 대부분 이미 대중화된 소위 베스트셀러 문화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취향 중 일부분의 종합을 마치 주류 문화보다 우월한 문화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거와 달리 ‘누가 깊이와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문화를 알고 있는지’가 힙스터를 결정짓는 것이다.

힙한 것’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과거 힙스터 문화는 주류문화에 대한 반항적인 문화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힙스터 문화는 주류 문화와 동화에 휩쓸려 저항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있다는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취향을 강제당하는 사회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힙스터 문화는 계속 존치될 것이다. 개성이 중요시되고 획일화를 거부하는 현대 사회에서 엘리트주의를 지닌 힙스터 문화는 자연스레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의 관심과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온 이면 끝에 ‘힙한 것’ 문화의 종착점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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