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국 영화계에선 큰 소란이 일어났다. 아카데미 영화제를 개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보낸 공문 때문이었다. 아카데미는 영화제를 대중화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3시간 30분에 달하는 생중계 시간을 3시간 이내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메이크업 ▲실사 단편 ▲촬영 ▲편집 4개 부문 시상을 방영하지 않고 시상하는 동안 광고를 송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은 비주류 시상 부문이었다.

공문과 함께 영화업계는 길길이 날뛰었다. 명망 있는 감독들은 성명문을 내며 반발했다. 알폰소 쿠아론은 “영화의 역사를 보면 소리, 색, 이야기, 배우, 음악 없이도 만들어진 명작이 있지만 촬영과 편집이 없는 영화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아카데미를 비판했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스턴트 ▲시각효과 ▲음악 ▲음향 ▲조명 ▲촬영 등 수많은 요소가 종합돼 만들어진다. 이 중 인기 없는 분야를 제외하는 건 근본을 무시하고 상업화만 추구하는 행위다. 반발이 계속되자 아카데미는 모든 시상 부문을 공평하게 중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치러진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23개 부문이 공평하게 시상 기회를 얻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판 아카데미 영화제라고 부를 수 있을 청룡영화제. 청룡영화제는 코로나19 이후 처음 열린 2021년 제41회 청룡영화제에서 기술 부문 시상식을 완전히 생략했다. ▲각본상 ▲기술상 ▲미술상 ▲음악상 ▲편집상 ▲촬영조명상 6개 부문 시상식을 2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 송출했다. 모두 사전 녹화한 영상이었고 현장 시상식에는 감독과 배우만 참여했다. 영화별 장면 컷인은커녕 수상소감조차 나오지 않았다.

청룡영화제에 존재하는 기술 부문 상 6개를 모두 푸대접했다. 2021년은 코로나19 때문에 현장 인원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핑계가 있었다고 쳐도 위드 코로나 이후 진행된 지난해 시상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시 사전녹화 한 영상으로 대체됐다. 그나마 수상소감이라도 추가됐으니 나아졌다고 봐야 할까. 시상식에서 제외하는 대상이 4개 부문에 그쳤던 아카데미와 비교하면 청룡영화제는 정도가 더 심하다.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각본상을 저렇게 얼렁뚱땅 넘겨도 될까.

수상 부문도 참 어이없다. 촬영과 조명은 엄연히 다른 분야의 작업인데 이를 하나로 합쳐서 수상한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이 따로 존재하는데 하나로 합쳤으니 촬영조명상은 모두 수상자가 2명이다. 비슷하게 여겨지더라도 아예 다른 분야인데 왜 하나로 합친 걸까. 각본과 편집상을 하나로 합쳐 '각본편집상'을 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 기술 분야를 아예 신경 쓰지 않은 무신경의 극치다.

기술 부문은 ▲무술 ▲분장 ▲스턴트 ▲시각효과 ▲의상 등을 모두 하나로 퉁쳐 '기술' 분야로 친다. 한 해에 개봉하는 영화가 많지 않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부문에 오르는 후보를 3명 정도씩으로 줄여서라도 세분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모두 각기 다른 분야인데 누가 뛰어난지 어떻게 평가하는가.

매년 엉성한 진행으로 비난받는 대종상영화제지만 시상 항목에 있어선 대종상영화제가 훨씬 낫다. ▲각본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의상상 ▲조명상 ▲촬영상 ▲편집상으로 촬영상과 조명상을 나눠서 시상하며 기술상은 ▲미술 ▲시각효과 ▲의상 ▲조명으로 어느 정도 세분화해 시상한다. 최근엔 다큐멘터리상과 대종이 주목한 시선상(독립영화 작품상)을 신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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