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관객들

그럼에도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는 있다

디자인=허지영 기자
디자인=허지영 기자

코로나 19 팬데믹은 우리 삶 전반을 바꿔 놓았다. 영화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영화 하면 극장에 가서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극장에 가는 것이 필수인 시대는 끝났다. 극장은 위기를 외치고 있다. 2023년의 극장 상황은 위기일까? 변화의 과정일까?

 

천만 영화의 시대, 빛 바랜 과거의 영광?

코로나 19 이전 영화를 보려는 대부분의 대중은 극장으로 향했다. 2019년 국내 영화산업의 총 매출은 2조5093억 원으로 이중 극장 매출은 총 매출의 76.3%인 1조9140억 원이었다. 같은 해 총 관객 수는 2억2668만 명이었으며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4.37회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 극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영화 산업의 핵심 축이었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극장을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 총 관객 수는 5952만 명으로 전년 대비 73.7% 감소했고 극장 매출은 5104억 원으로 2001년 수준으로 감소했다. 국내 극장 3사는 도합 619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행진은 팬데믹 내내 계속됐다.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영화 산업계는 관객 수도 한국 영화의 흥행도 모두 코로나 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극장이 과거의 영광을 완전히 되찾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해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2.19회로 2019년의 절반을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도 저조했다.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의 관객 수 점유율은 36.9%에 그쳤다. ‘범죄도시3’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지난 10일 기준 올해 5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는 ‘밀수’ 1편에 그쳤다. ‘범죄도시3’과 ‘밀수’를 포함해 3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는 3편에 불과했다. 2019년 같은 기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는 2편이었고 3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는 6편이었다.

2018~2022년 한국 영화·영상산업 시장 규모(단위: 100만 달러) <출처=영화진흥위원회>
2018~2022년 한국 영화·영상산업 시장 규모(단위: 100만 달러) <출처=영화진흥위원회>

관람료 인상이 품은 양날의 검

팬데믹 시기 천문학적인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극장 3사는 매년 영화 관람료를 인상했다. 이는 관객들이 극장을 떠나는 직접적인 동인으로 작용했다. 2019년 당시 평일 1만 원과 주말 1만1000원이던 관람료는 평일 1만4000원과 주말 1만5000원까지 올랐다. 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주로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관람한다는 특성은 관람료 부담을 가중했다.

극장은 관람료 인상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주장했지만 관객들의 생각을 달랐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0-2021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관객의 절반 이상은 영화 표 1장을 구입하는 데 8000원에서 1만2000 원까지 지출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관람료 수준인 1만 4000원 이상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관람객은 5.7%에 불과했다. 주기적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해 온 이예준(23) 씨는 “예전에는 주기적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챙겨 봤는데 이제는 영화 한 편을 보러 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해서 극장에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극장은 관람료를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영화관산업협회 김진선 회장은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관람료 수준에 대해 “그럴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비용이자 콘텐츠를 선보이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비용이다”며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8~2022년 한국 영화·영상산업 시장 비중(단위: %) <출처=영화진흥위원회>
2018~2022년 한국 영화·영상산업 시장 비중(단위: %) <출처=영화진흥위원회>

팬데믹 시기 OTT의 성장과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시대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OTT는 국내 영화∙영상산업 시장의 60%를 점유했다. 2019년 이전까지 극장이 해당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가 대거 제작되며 영화인들은 OTT로 향했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제작 투자가 거절당한 작품이 OTT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된 것을 넘어 영화감독과 스태프들이 OTT 콘텐츠의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 형성됐다. 장우진(미디어) 교수는 “코로나 19로 영화 시장이 위축돼 활동하지 못하던 영화인들이 OTT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며 오히려 이전보다 활동 폭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시대가 이어지며 영화라는 콘텐츠의 성질도 변화했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한 편 한 편이 완결성을 가지며 일정 범위의 시간 동안 상영되는 영상 콘텐츠로 여겨졌다. 하지만 OTT 시대로 접어들며 한 편의 영화로 나올 법한 스토리들이 몇 부 나아가 몇 시즌으로 나뉘어 배포되는 시리즈물로 제작됐고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한 콘텐츠가 형식을 넘나들며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갖고 관객을 끌어들이는 시대가 됐다. 장 교수는 “시리즈와 극영화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며 “블록버스터 시리즈 영화나 OTT 시리즈물 모두 전체를 통틀어 한 덩이의 세계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리즈물의 성공은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시대를 공고하게 했다. 영화 1편을 볼 값이면 1달 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이점과 OTT 오리지널 콘텐츠를 활용해 대중들로 하여금 일반적인 콘텐츠는 OTT를 통해 즐기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OTT 오리지널 콘텐츠 시대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콘텐츠를 담아내는 형식은 다양해졌지만 콘텐츠의 다양성은 증가하지 않았다. 장 교수는 “OTT 기업은 데이터 분석에 기반 투자 방식을 활용하기 때문에 검증된 것에만 반복 투자한다”며 “OTT 시대에 콘텐츠가 다양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폭력과 액션 등 특정 장르에 편중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OTT 자본이 해외 자본이라는 점도 한계다. 장 교수는 “현재는 ‘K-콘텐츠’의 힘이 있어 괜찮지만 다른 국가 콘텐츠의 파급력이 강해져 해당 국가로 OTT 자본이 이동하게 된다면 콘텐츠 제작 자체가 어려워지며 시장에 큰 위기가 도래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OTT 자본이 국내 영화 생태계를 위협하는 문제도 있다. 김한상(사회) 교수는 “해외 OTT 자본이 막대한 제작비 지원의 이면에 저작권 행사의 권리를 독점하는 불공정 계약을 하는 점과 글로벌기업이라는 점을 이용해 일부 제작노동자 또는 비유명 연기자의 정당한 요구에 무응답으로 대처하는 점 등은 장기적으로 국내 영화 생태계에 독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가치에 집중하는 관객

그럼에도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고유의 경험은 변하지 않았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관람’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같은 시각에 시작하는 영화를 같은 장소에서 일정한 수의 관객들이 함께 본다는 점은 여전히 다른 미디어가 줄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며 “물리적 장소로서의 극장과 그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및 사운드 시스템은 영화를 다른 미디어와는 다른 몰입적 경험을 제공하는 미디어로 만든다”고 전했다.

OTT로 대부분의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대에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2019년 전체 극장 매출액에서 4.6%를 차지하던 특수상영 매출의 비중은 지난해 10.9%까지 증가했다. 이에 국내 극장은 ‘IMAX’와 ‘돌비 시네마’ 등 선진 영상 음향기술을 도입한 상영관을 확충하고 있다. CJ CGV 허민회 대표는 지난달 30일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서 “관객들의 영화 선택 기준이 엄격해지는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최대한의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는 각종 특별관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장 교수는 “영화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으면 극장에 가기 어렵게 됐다”며 “1000원에서 2000원을 더 주더라도 OTT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나 사운드 또는 특수효과 등을 경험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주로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관람한다는 특성 또한 극장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의 원천이다. 장 교수는 “영화관의 분위기를 느끼며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사람과 교감하는 경험 또한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향하게 하는 요인이다”며 “데이트의 주요 코스 중 하나로 영화 관람이 꼽히는 것과 부모들이 자녀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함께 보러 가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19 팬데믹 위기를 헤쳐 나가고 OTT가 영화영상 시장의 대권을 차지하는 와중에도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은 것은 극장만이 줄 수 있는 공간적 경험이었다. 극장은 이를 극대화하고자 미래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극장만의 노력으로 관객이 극장으로 모일 수는 없다. 영화 제작 업계 또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를 만들어 극장의 노력에 호응할 때 관객들은 극장에 모여들 것이다. 이때 극장은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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