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살인(殺人):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

 

1. 끄면 덥고 켜면 추운 요즘 날씨는 우리 공주님을 감기 들게 했다. 병원에서 타온 약이 효과가 좋은지 감기 기운이 금방 가라앉았다. 아프면 내일 어린이집을 안 가도 되는 것이냐며 좋아했는데 아쉽겠다. 나는 2년 전 아내와 갈라서고 나와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애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삼겹살로 회식을 했다. 부장님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아마 모를 것이다) 대리를 불러준다며 한 잔만 더 하자고 하셨다. 부장님, 저도 아이가 대학생이었다면 얼씨구 좋다 하며 손을 잡았을 거예요. 회사에서는 어깨에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아팠는데 집에 오니까 덜하다. 아이는 다른 애들보다 늦게 하원하도록 종일반을 하고, 주로 어머니께서 아이를 데리고 오신다. 결혼할 때 어머니께서 덕담으로 손주를 많이 낳으라 하셨는데 딱 하나 낳았더니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만지면 깨지는 그릇처럼 아이를 대하신다. 본인의 삶이 더 중요한 아내 대신에 어머니께서는 내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신다. 밥 먹을 땐 항상 유산균을 언급하시며 김치를 물에 헹구고 죽죽 찢어 아이 밥그릇 위에 꼭 올려 주신다. 주말에만 먹는 스팸은 잘게 썰어 팔팔 끓는 물에 데치신다. 이유는 통조림에는 합성첨가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7년 전이었나 카톡하는 방법을 여쭤보셨는데 그 이후로 친구분들과 함께 유튜브까지 섭렵하셨다. 아이는 내가 올 때까지 이불 속에 있을거라며 2시간 동안 찜통같은 이불에 숨어 있었다. 나는 땀에 뒤덮인 아이 머리를 넘겨주며 선풍기 바람을 쐬었다. 어제 어린이집 준비물로 애 엄마랑 아이랑 셋이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액자를 만들어 왔다. 잘 보이는 탁상 위에 올려두고 나도 눈을 붙였다. 오늘 하루도 그냥 그럭저럭 잘 보냈다. 충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루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내일도 오늘만큼만 보내자. 그러면 잘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2. 우리나라에서 살인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며 존속살해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될까? 사회 계약설에서는 우리 사회가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너를 죽이지 않고 너도 날 죽이면 않으니 우리 공동체는 안전하다’는 말은 사회에서 상당히 합리적인 말이다. 하지만 개인에게 ‘살인’이 치명적인 이유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살인은 피해 당사자와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가능성, 그 사람과 스쳐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가능성, 넓게는 세상의 미래까지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죽고 싶지 않아도 죽는다. 존재는 비존재를 안고 있다. 존재가 비존재를 안고 있다.

 

3. 그래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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