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2아웃 풀카운트. 주자 만루. 투수의 공 하나에 양 팀 승패가 갈리는 상황.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타자에게 다가가 야구장을 가르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담장 밖으로 날아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투수는 고개를 떨구고 타자는 포효한다. 한쪽은 기쁨의 함성을 내지를 때 다른 한쪽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본다. 야구가 뭐길래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일까. 야구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국내 프로야구의 시작, 그리고 지금

1982년 3월 27일.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젊은이에게는 낭만을, 국민들에게는 여가선용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국내 프로야구는 화려하게 등장했다.

국내 프로야구가 태동한 계기는 그리 건전치 못하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을 분산하기 위해 3S 정책의 하나로 국내 프로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6 아시안 게임’과 ‘1988 올림픽’ 이후 국내 스포츠 산업의 활성화에 힘입어 국내 최고 스포츠의 반열에 올랐다.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차재혁 선임연구원은 야구가 국내 최고의 스포츠 종목이 된 이유에는 ‘선점 효과’가 있었다며 “가장 먼저 탄생했기에 국민적 관심사가 야구에 쏠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민의 관심을 바탕으로 야구는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2006 WBC’와 ‘2008 올림픽’에서의 선전 이후 2008년에는 13년 만에 5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2년에는 7백만 그리고 2017년에는 무려 8백40만 명의 관중을 기록하기도 했다. 차 선임연구원은 “2020년 국내 프로 스포츠 산업의 규모는 약 50조로 국내 GDP 대비 2.5%라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야구 산업이 이를 선도하는 측면에서 그 위상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별처럼 수많은 스포츠, 그중에 야구

우리 사회에서 야구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갤럽의 2021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4%에 달한다. 두산 베어스의 팬 이세현(20) 씨는 “다른 스포츠보다 야구를 더 많이 좋아해서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을까?

우선 야구는 타 스포츠 대비 다득점이 가능한 스포츠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야구는 한 번의 타격으로 최대 4점까지 낼 수 있는 스포츠다. 즉 한 번의 득점 기회로 경기 결과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비록 팀이 지고 있더라도 관객들이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다. 이 씨는 “야구는 2~3점 차이가 날지라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본다”면서도 “축구는 점수 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벌어지면 결과가 예상된다”고 이야기했다.

또 야구는 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단체의 성격을 띠지만 그 속에는 투수라는 개인과 타자라는 개인 간의 대결이 숨어 있다. 특정 투수에게 특정 타자가 유난히 강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타 스포츠가 팀과 팀의 더비를 위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야구는 이에 더해 개인 간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한신대학교 특수체육학과 명왕성 교수는 “야구는 팀 스포츠이면서도 개인 스포츠다”며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처럼 개인들의 이야기를 양산할 수 있는 것이 야구의 흥미로운 점이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야구는 타 스포츠 대비 ‘자발 대칭성 깨짐’ 현상이 강하다는 물리학적 매력을 지닌다. 대표적인 예가 야구장이다. 대다수의 구기 종목 경기장은 직사각형 형태의 상하좌우 대칭 형태다. 반면 야구장은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특히 외야 펜스의 모양과 거리는 천차만별이다.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권영균 교수는 “오타니의 홈런 중 30개 정도만이 미국의 어떤 구장에서든 홈런이 된다”며 “나머지 10개는 일부 구장에서만 홈런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왼손 타자가 오른손 투수에게 강하고 오른손 타자가 왼손 투수에게 강한 경향. 반시계 방향으로 오른손 타자가 왼손 타자보다 두세 걸음 앞서는 것에도 ‘자발 대칭성 깨짐’이 숨어 있다. 권 교수는 이러한 물리학적 현상들이 흥미를 주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야구, 왜 직접 가?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야구장에 가야만 야구를 볼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관중이 야구장으로 향한다. 키움 히어로즈의 팬 진수민(21) 씨는 “한 달에 두 번은 야구장을 간다”고 전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팬 곽민정(21) 씨는 “부산에 놀러 갈 때 꼭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날에 맞춘다”고도 전했다. 이들이 야구장으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직관’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커뮤니티의 형성을 중요시한다. 그러한 인간에게 ‘직관’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된 느낌을 준다. 또 프로야구의 배타적 지역 연고제를 통해 자신의 지역적 또는 자기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차 선임연구원은 “배타적 지역 연고제로 한 지역에 많은 스포츠팀이 존재할 수 없다”며 “이는 곧 응원할 수 있는 팀의 수에 한계로 이어져 자신이 속한 지역이나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잘 대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체성 확인과 지역 연고제를 바탕으로 형성된 응원 문화는 야구의 직관 유인으로 자리 잡았다. 설문조사 플랫폼 메타베이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47%가 야구장을 찾는 이유로 ‘응원장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명 교수는 “프로야구는 지역 연고제 성격이 매우 강하기에 지역 간 경쟁에서 파생된 응원 문화가 많다”고 전했다. 또 명 교수는 “야구는 응원단을 중심으로 모두가 응원하는 분위기다”며 “팀과 선수 개개인의 응원가를 계속 제공하기에 팬들은 재밌을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마케팅, 변해가는 야구장 풍경의 일등 공신

오늘날 야구장 풍경은 과거의 야구장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야구장의 주축은 소위 ‘아재 팬’이라고 불리는 중년 남성들이었다. 당시 야구장에서는 소주를 먹으며 담배를 피우고 경기 결과에 따라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 등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에 변화를 준 계기는 역설적으로 ‘2002 서울 월드컵’이었다. ‘2002 서울 월드컵’으로 인해 국민의 관심이 축구로 쏠리며 IMF 외환위기에 더해 야구는 내림세를 걷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은 마케팅이었다. 차 선임연구원은 “협회나 구단 차원에서 남성 관객은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해 2007년을 기점으로 여성을 표적 집단으로 선정했다”며 “이후에는 표적 집단을 아동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야구장은 점차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식됐다. KT 위즈 파크의 경우에는 미끄럼틀이 설치돼있으며 SSG 랜더스 필드는 온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존이 마련돼있다. 현시점에서 야구장은 스포츠는 물론 또 다른 콘텐츠를 즐기러 가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차 선임연구원은 “단언컨대 야구장이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변모한 데는 마케팅의 성과가 크다”며 “마케팅의 표적 집단을 아이들로 잡음으로써 부모로까지 연결돼 상당한 파급 효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야구에 이토록 적극적인 마케팅이 가능한 데에는 야구의 마케팅적 효율성 때문이다. 스포츠 산업의 수익은 대개 중계권료에서 비롯되며 중계권료는 방송사들의 관심도에 따라 결정된다. 프로야구의 경우 인기 종목이기에 방송사들의 관심도가 높다. 따라서 방송사들은 비싼 값을 주고 얻어 온 중계권료에 대응하는 이익을 얻고자 한다. 이때의 수단이 바로 광고료다. 야구는 타 종목보다 광고를 유치하는 데 있어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 바로 야구의 ‘인터벌’ 때문이다. 명 교수는 “축구는 중간휴식 시간 15분을 제외하고는 광고를 내보낼 시간이 거의 없다”며 “반면 야구는 이닝이 바뀔 때와 공수가 교체될 때 그리고 투수를 교체할 타이밍마다 광고를 지속해서 내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 정적인 순간이 많은 야구의 특성도 광고를 유치하기에 유리한 측면이다. 축구는 파울이나 프리킥 장면을 제외하고는 정지된 상황이 거의 없다. 반면 야구는 일부 순간을 제외하고는 타자석에 고정돼있다. 명 교수는 “이러한 측면에서 야구는 경기 중 기업을 지속해서 노출할 기회가 많은 스포츠다”며 “기업으로서는 마케팅적으로 매우 효율적인 스포츠다”고 전했다.

 

야구의 질적 하락, 그로 인한 우려

프로야구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그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기력을 포함한 다양한 질적 유지 또는 발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질적 하락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프로야구의 경기력 하락 요인으로 유소년 시스템과 인구 문제를 꼽았다.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수는 감소하는데 스포츠 선수들을 육성하는 유소년 시스템은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것이다. 명 교수는 “축구의 경우 구단의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선진 시스템에서 훈련하고 있다”며 “반면 야구는 여전히 학교 중심이다”고 말했다. 또 차 선임연구원은 “잘하는 선수의 비율은 일정한데 출산율 감소로 절대적인 숫자가 줄기에 질적 하락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도 “‘2002 서울 월드컵’ 이후 체육 유망주들이 축구에 많이 입문했듯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야구에 입문했을 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2~3년 뒤를 주목할 필요는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문제들의 결과는 곧 국제 경쟁력의 상실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23 WBC’다. 본선 1차전에서는 호주에 7:8로 일본에는 4:13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대패했다. 세미프로 선수들이 주를 이룬 체코와의 비슷한 경기력을 보이는 등 국내 리그에서만 강한 우물 안 개구리 꼴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기력의 하락은 결국 관심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신안산대학교 스포츠지도과 최윤동 교수는 “IMF 외환위기 이후 프로야구는 관중 수가 감소하다가 ‘2006 WBC’와 ‘2008 올림픽’에서의 선전을 통해 인기가 반등할 수 있었다”며 “지금과 같은 부진한 경기 결과를 계속 보인다면 프로야구의 관객 수가 감소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또 명 교수는 “경기력이 감소하면 관람 동기가 감소한다는 가설은 최근에는 일부 유효하다”며 “미디어의 발달로 스포츠 팬들의 선택지가 늘면서 굳이 재미없는 경기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역전의 짜릿함을. 누군가에게는 연인간의 달달한 만남을. 또 다른 이들에게는 가족과의 추억을. 그렇게 야구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억을 선물하고 있다. 그 매력에 홀린 국민은 쉽게 야구로부터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랑을 줄 것이다. 만일 야구가 전처럼 매력적이지 못하다면 그 사랑은 영원치 못할 것이다.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연인이 서로 노력하듯 야구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인 변화 도모와 질적 상승만이 관중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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