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 걸러 한 집은 빈집이다” “동네에 하나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이 폐업했다” 수년 전부터 지방 인구가 줄어들며 나오는 한탄 섞인 목소리다. 저출산으로 총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도권 쏠림으로 지방 인구가 부족해지며 인프라까지 악화하고 있다. 인프라의 악화는 생활 불편을 초래해 또다시 지방 인구의 감소라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지방이 위험하다.

최근 저출산의 지속과 수도권 인구 쏠림으로 지방소멸 위험이 대두되고 있다. 지방소멸이란 개념은 우리보다 앞서 지방소멸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마스다 보고서’에서 2014년 최초로 사용됐다. 해당 보고서의 발간 이후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2015년 이후 매년 최저 출산율을 갱신함에 따라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며 지방소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전국 2백29개 지자체 중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행안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매년 1조 원씩 10년간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급하는 등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인구 감소세는 지속되고 있다.

 

지방의 혈액, 인구가 유출되자 지방이 죽어간다.

지방소멸의 원인은 인구감소와 고령화 상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청년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려 인구가 유출되는 것에 있다. 통계청의 국내 인구이동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동안 대구광역시에서 6천5백 명 이상의 청년과 경상북도에서 9천9백 명 이상의 청년이 타지역으로 유출됐다. 전출 청년의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전입했다. 구미시에 거주하다 최근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로 전입신고를 마친 이현수(28) 씨는 “서울시가 지방보다 비교적 일자리 찾기가 용이해 전입하게 됐다”며 “서울시에 살아보니 인프라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방 인구 감소는 지방을 악순환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일차적으로는 지역의 생산성 악화를 초래한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촌 읍면 지역 인구가 3천 명 미만으로 떨어지면 생산성이 최저 한계점에 도달해 병의원과 같은 생활시설이 폐업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시내버스 운행 횟수 감소와 시외버스터미널 폐업 등도 이어져 지방의 생산성과 교통 인프라는 악화한다. 생산성 악화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지방 대학의 위기도 초래한다. 지역인재 할당제 등의 제도에도 불구하고 지방에 존재하는 유수한 기업의 수가 부족하니 지방 대학 졸업이 갖는 이점이 크지 못하다.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수도권 대학으로의 진학을 선호해 지방 대학은 위기를 맞는다. 실제로 2000년 이후 폐교된 20개 대학 중 19개 대학이 지방 대학이다. 최진호(사회) 명예 교수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청년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지방 대학의 폐교는 다시 지방 상권의 악화를 불러와 지방소멸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지방, 살려내야만 한다.

지방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분명하다. 어떤 지역이든 오랜 시간 쌓아온 개성 있는 문화 자산을 지니고 있다. 일반 역사로는 기록되지 않는 지역 전설과 향토사 그리고 독특한 생활방식 등이 그 예다. 각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 또한 국어의 변천사와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어 언어학적으로 갖는 의미가 크다. 각 지방이 갖는 특수성이 모여 곧 국가의 문화가 된다. 삼척시청 전략사업과 과장 김신(행정·85) 동문은 “나라를 하나의 몸으로 비유했을 때 수도권이 심장이라면 지방은 손과 팔 같은 역할을 한다”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소멸이 도래하면 역사성을 지닌 지역의 개성과 특성이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워 문화의 획일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방에 농업적 기반을 둔 우리나라의 특성상 지방소멸은 농업 기반의 붕괴도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제25회 농업전망’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농지 면적은 1백54만7천ha였지만 2031년에는 1백46만5천ha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농가인구는 연평균 1.4%씩 감소하고 농업생산량 역시 감소세를 이어간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농업적 기반의 붕괴는 식량과 에너지의 조달에 문제를 초래해 국가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식량 자급률이 45.8%에 그치는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빵과 라면 그리고 국수 등의 식료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해 소비자 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방을 지키는 것은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수도권의 인구 집적 정도가 심화하면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일 교통량이 20만 대를 상회하며 상습적인 정체가 발생한다. 상습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이전에는 도로를 양옆으로 확장하는 방식의 개선이 이뤄졌지만 치솟는 땅값과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현 고속도로 지하에 추가로 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 있는 양재IC에서 기흥IC 사이 26.1km 구간의 지하화 추정 사업비는 3.8조 원이다. 김은지(22) 씨는 “적절한 인구 분산 시 사용하지 않아도 될 예산이라 생각한다”며 “인구 분산을 위해서라도 수도권 도로 개선에 예산을 투입하기보다 타지역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지방을 향한 심폐소생술, 절반의 성공에 그친 정책들

정부는 지방소멸에 맞서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부터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해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일부 정부 부처를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전해 행정수도화를 추진하는 등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이전 이후 지방세 수입이 약 33배 증가했고 3만 명 이상의 인구 유입 효과도 나타났다. 또한 지방 인재 채용률도 증가하며 지역의 일자리 확대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인구 유입은 목표치의 38%에 그쳤고 유동 인구 증가 정도도 예상보다 적어 지역경제 활성화 역시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교육열이 강한 대한민국의 특성상 자녀를 수도권 소재 학교에 다니게 하기 위해 직원 본인을 제외한 가족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주말이면 가족을 만나러 수도권으로 이동해 지역 내 유동 인구 증가 효과가 작았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저렴한 임대료를 내세워 지방으로의 유입을 꾀하는 시도도 등장했다. 저렴한 임대주택과 귀농 지원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지방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라남도 화순군이 빈집을 활용해 월 1만 원에 임대주택을 제공하자 10.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나주시도 ‘청년이 돌아오는 매력 넘치는 도시 조성’을 목표로 0원 임대주택 사업추진을 확정하는 등 앞다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입된 인구를 장기적으로 붙잡아 둘 원동력과 일자리가 없고 임대주택도 최대 6년만 거주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지속성이 떨어져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동문은 “지자체 간에는 정책이 비슷하게 형성돼 있어 서로 간의 인구 쟁탈에 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직 한발 남았다, 성장 가능성

지방소멸을 가속화시키는 핵심 키워드는 ‘성장 가능성’이다.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 그리고 좋은 학군 등 수도권에 거주할 때 갖는 개인의 성장 가능성이 지방보다 크기에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몰린다. 정부는 이를 막겠다며 지방의 정주 여건을 확보하는 정책을 펼쳐왔지만 지방은 공공보건의 채용에 수도권 평균보다 2억 원 가량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도 지원자가 없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건 지방의 정주 여건 확보가 능사가 아님을 의미한다.

지방소멸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여겨지는 독일의 경우 헌법에 ‘재정균형 원칙’을 규정해 아무리 인구가 적고 자체 수입원이 없는 지역이라도 전국 평균의 90%에 해당하는 세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지방은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는 기업과 사람의 유입을 용이하게 해 결론적으로 지역 균형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정부 부처와 대기업들이 각 지방에 고르게 분포해 있고 해당 지역인재를 우대해 채용한다. 이를 통해 독일은 지역에 따른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동등하게 만들었다.

우리 정부도 개인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펴야 할 시점이다. 지방이 수도권과 동등한 수준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줄 때 비로소 청년은 다시 지방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방소멸이 점점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시점이다. 지방이 완전히 소멸한 이후에 지방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지방이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 지방을 살리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고민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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