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해병대 1사단 소속 채모 해병이 죽었다. 수해 복구 작전을 위해 향했던 경북 예천군에서 부대가 내린 지시는 복장을 잘 갖춰 입고 언론 대응을 잘하라는 것이었다.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실종자 수색을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던 채 해병은 급류에 휩쓸려 숨을 거뒀다. 그는 입대한 지 겨우 넉 달 된 포병여단 소속 통신병이었다. 또한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다.

사후 수습과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군의 모습은 진상 규명 그리고 재발 방지와는 거리가 멀다. 해병대 수 사단은 초동 조사에서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조사보고서에 이들의 혐의를 명시했고 경찰에 사건을 넘겼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 문건에 국방부 장관이 자필로 결재했음에도 국방부는 사건 자료를 회수했다. 오히려 수사단장이 보직해임 후 징계에 회부됐다. 이후 사건 자료에서 1사단장과 7여단장 등 상관들의 혐의는 제외됐다.

군은 현 사태의 심각성을 철저히 외면하고 싶은 듯하다. 국민들은 물론 역대 해병대사령관과 해병대 전우회가 합동으로 “수사 여건을 보장하고 일체의 외부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군의 조사 결과가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며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면 안 되는 것이 장관의 책무다”고 말했다. 현행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내 사망사건은 민간에서 재판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의 조사 자료는 경찰과 법원에 제공되는 참고자료일 뿐이다. 군의 조사 자료에서 범죄 혐의자로 적시되는 여부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은 군 이 경찰 수사에 지침을 제공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1사단장 등 4명을 제외한 것은 대놓고 대대장 선에서 꼬리를 자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군 수뇌부의 이러한 행태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군은 장병을 소모품 그 자체로 인식하겠다는 선언이 될 것이다. 또한 군이 여전히 이번 사태를 가벼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이는 군의 제1원칙인 상명하복의 붕괴를 가져온다. 상명하복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지휘체계를 유지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궤변까지 늘어가며 군 수뇌부를 지키기 위해 구성원을 희생양 삼아 내치는 군에서 어떤 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상관의 명령에 따르고 나라를 지키려고 하겠는가?

군 수뇌부는 지금의 행태가 사건을 조기에 정리하고 군 조직과 국가를 안정시키는 길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일 것이 자명하다.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군 수뇌부만 외면할 수는 있어도 모를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군은 수사 외압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건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순리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것이 군이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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