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산업 시장 규모가 사상 최초로 20조 원을 돌파했다. 과거 하위문화였던 게임이 현재의 주류문화로 성장한 것이다. 한류를 떠올리면 K팝이나 K 영화 같은 미디어 매체들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실제 수출액은 K게임이 약 70%를 차지한다. 과거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놀이’라는 취급받았지만 현재 게임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음지에서 양지로, 게임문화의 발전

한국 게임의 시작은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아케이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오락실이 당시 청소년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 오락실이 번화가뿐 아니라 학교나 주택가 주변에도 들어섰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락실은 일본 개발사의 게임을 무단 복제해 운영했고 무허가 상태였다. 게다가 오락실이 청소년 유해시설로 지정된 이후에는 으슥한 곳에 있어 청소년 탈선 문제로 이어져 게임은 부정적이라는 편견이 만연해졌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은 게임의 방향성을 바꿔 놓았다. PC게임이 초기에는 외국게임을 모방하거나 번역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소프트웨어 개발과 함께 성장하며 새로운 산업의 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게임은 개발의 상용화 가능성이 커지며 본격적으로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게임잡지가 등장하기도 했고 PC통신을 통한 사용자 간 정보 공유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사용자들은 게임을 능동적으로 즐기기 시작했고 게임은 주류문화로 성장하게 된다.

한국 게임은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구축과 피시방의 등장은 온라인 게임의 발전에 기여했다. IMF 외환위기로 경기 불황 속 피시방 창업은 큰 인기를 끌었고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같은 게임들은 피시방의 인기에 힘을 보탰다. 당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게임인 ‘리니지’의 경우 1998년에 동시 접속자 수 1천 명에서 1999년 1만 명으로 늘어났다. 온라인 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커졌으며 게임의 장르도 점점 다양해졌다.

WHO도 권고하는 게임? 팬데믹이 낳은 게임 대중화

한국 컨텐츠 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에 게임을 즐기는 국민은 약 65%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19(이하 코로나 19)가 발생한 이후 2020년에는 게임을 즐기는 국민이 약 70%로 5%p 증가했다. 심지어 게임을 질병이라 규정했던 WHO에서 글로벌 대형 게임사와 함께 ‘플레이어파트투게더(Play Apart Together)’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플레이어파트투게더 캠페인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을 촉진하고자 시작됐다. 코로나 19가 새로운 게임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게임은 과거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게임은 더 많은 계층과 세대에서 향유되기 시작했고 게임 이용 시간 또한 증가했다. 게임이 일상화된 것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연세대학교 게임문화연구센터가 공동 연구를 진행한 보고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게임 가치의 재발견'에서는 게이머들의 새로운 특징을 설명한다. 특히 보고서에서 60대 이상의 게이머인 그레이 게이머에 주목한다. ‘젊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게임을 ‘게임을 모르는 세대’라고 치부됐던 노년층이 즐기는 양상은 흥미롭다. 또한 게임 시간이 긴 하드코어한 게이머와 일반 게임 이용자들이 분리되는 양상을 보였다. 게임의 일상화가 진행되며 일반 게이머들이 늘면서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상대적 비중이 줄어들었다.

보고 듣고 즐기고! 다양하게 즐기는 게임

게임이 발전하면서 게임 시나리오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시나리오는 게임 제작의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이용자들을 게임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은 탄탄한 스토리가 흥행에 한몫하기도 했다. 장지호(23) 씨는 “흥미로운 스토리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긴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게이머가 서사 속 주인공인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스토리 라인과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이 게임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이 게임의 제작사는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소설과 영화 그리고 보드게임까지 제작했다. 출판된 소설 시리즈 중 몇 작품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극 될 정도로 호평받았다. 또한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게임 원작 영화 흥행 1위와 게임 원작 영화 최초로 4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낸 작품이기도 하다.

게임에서 청각적 요소도 빠질 수 없다. 게임에 삽입된 음악은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고 게임을 하고 난 후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문명4’의 메인 타이틀 곡인 ‘Baba Yetu’는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 올랐다. 또 게이머들은 과거의 게임 음악을 찾아 들으며 그 당시를 추억하기도 한다. 게임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게임사인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의 OST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공연을 주최했다. 게임이 재미를 넘어 예술로 재탄생한 순간이다.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관심과 게임 산업 육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짐에 따라 다양한 게임 행사들이 열리기도 한다. 이러한 게임 행사는 게임을 더 여러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지난달에는 ‘게임 사회’라는 전시회가 기획됐다. 또 2005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 온 ‘G-star’ 행사와 2009년부터 이어져 온 ‘PlayX4’에서는 대형 게임 기획사부터 인디게임까지 다양한 게임을 경험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강지웅 게임평론가는 “게임 행사에서 진행되는 레트로 장터를 통해 레트로 게임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도 있고 코스프레를 통해 게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언론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국경없는기자회’는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도서관을 만들었다. 웹사이트나 매체가 제한돼도 ‘마인크래프트’는 접속이 가능한 점을 이용해 ▲러시아 ▲멕시코▲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국가에서 검열당한 기사와 정보를 모아 놓은 것이다.

게임도 스포츠다! e스포츠의 발전

온라인 게임의 발전과 함께 e스포츠도 성장했다.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피시방을 중심으로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피시방 대회는 수익성 문제로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대회를 중계하는 케이블 방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프로 게임 리그의 출범으로까지 이어졌다. e스포츠의 높은 인기와 가능성을 확인한 대기업은 e스포츠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김상원(23) 씨는 “e스포츠를 즐겨 보는 입장에서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리그오브레전드’가 이어받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발달하며 중계의 규모도 커졌다.

나날이 커지는 e스포츠의 인기에 문화체육관광부는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장동엽 사무관은 “e스포츠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이를 진흥하기 위한 여러 정책과 예산 투입 근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콘텐츠산업과에서는 e스포츠와 관련된 ▲대회 지원 ▲상설경기장 구축 및 운영 ▲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 ▲전시관 및 아카이브 운영 등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장 사무관은 “e스포츠 경기장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어 부산과 광주 그리고 대전에 경기장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한 ”경남과 충남 지역에 추가로 e스포츠 경기장을 구축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올해에 개최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e스포츠를 종목으로 선발해 주목받았다. 공대영(경제∙3) 학우는 “자주 즐겨하는 게임이 아시안 게임 종목에 선정돼 흥미롭다”며 “올림픽에서도 e스포츠를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e스포츠 종목화를 단호하게 반대했다. 이처럼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받기에는 어렵다는 주장들도 존재한다.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종목과 달리 게임은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이는 스포츠의 상품화로 이어져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으며 시스템이나 규칙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게임은 선수들과 관객들에게 부담감을 줄 수 있다. 강 평론가는 “e스포츠는 기존 스포츠와 달리 종목의 대중성이 종목의 생명과 이어져 메이저 스포츠로의 발전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빠르게 성장한 게임 문화의 부작용

게임 문화가 발전하면서 게임 산업도 발전했다. K게임의 매출이 20조를 넘기며 게임산업에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문화 발전에 비해 느린 게임 산업 발전으로 아쉬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한국 게임의 특징 중 하나는 확률적으로 아이템을 뽑는 ‘가챠’같은 사행성 요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행성 요소는 게임사에 매력적인 수입원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매출의 약 90%가 유료 아이템 판매였다. 사행성 가챠가 들어간 게임이 주류가 돼 나타나는 문제점은 매출 순위에서 가챠 시스템을 차용하지 않은 게임들이 가챠가 포함된 게임들에 밀려 고객들에게 게임을 알릴 기회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사행성 아이템 매출의 30%를 플랫폼 수수료로 가져가는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의 랭킹에 노출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가챠 시스템을 차용하지 않는 게임들이 상대적으로 수익성에서 밀리다 보니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특정 장르로 편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점이다. 소위 수집형 RPG 같은 매출이 높을 가능성이 있는 장르들만 투자받는다.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K-게임 사행성의 비밀’의 저자 ‘고라’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대안 중에는 사행 산업에서 시행 중인 사행 매출 총량제처럼 사행성 아이템의 매출이 해당 업체 매출의 일정 비율이나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게임 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게임 업계의 특성상 이직률이 높다. 회사는 안정적이더라도 직원들의 고용은 불안정한 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크런치’라는 강도 높은 초과근무는 게임개발자들을 죽어가게 만들었던 게 당시 게임 업계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중소개발사가 문을 닫고 대기업 위주로 게임 업계가 재편되며 근로환경 개선의 움직임도 보인다. 대기업 위주의 게임 업계는 이직하기 어렵게 변했으며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인식 또한 커졌다. 이런 상황은 게임 업계 종사자들이 연대하며 노조를 만드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노조 불모지라는 별명의 게임 업계가 바뀌는 추세이다. 엔씨소프트 노동조합 ‘우주정복’의 송가람 지회장은 “고용안정과 투명한 보상 시스템의 확립을 위해 회사와 교섭할 예정이다”며 “회사도 노조 설립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좋은 영향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한심하게 생각되며 무시당하던 게임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게임이 대중문화로 자리 잡으며 단순 오락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지가 중요해졌다. 게임 산업이 게임 문화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게임 문화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다시 게임이 음지로 돌아가지 않고 완전한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 게임 산업과 문화가 함께 성장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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