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네이버 영화>
<출처=네이버 영화>

최근 각종 매체에서 소위 ‘정의 구현’이라 칭하는 사적제재를 다룬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가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유튜브 등 각종 SNS에 속칭 ‘참교육’ 콘텐츠 또한 무수히 업로드되고 있다. 이들 모두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악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사적제재를 담은 콘텐츠는 통쾌함을 선사하며 대중을 열광케 한다.

대중이 사적제재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 사법 체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법치국가에서 형벌을 부과하고 집행할 권한은 피해자가 아닌 국가에 있다. 또 형벌의 정도는 법률에 따라 이뤄지기에 실제 처벌의 수준과 피해자가 원하는 처벌의 수준 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디어 속 사적제재는 이와 같은 괴리가 없다. 대중들이 악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응징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한다. 하지만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는 통쾌함 속에 감춰진 사적제재의 이면을 드러낸다.

주인공 밀드레드의 딸 안젤라는 강간치사의 피해자다. 그녀는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을 찾으려 애쓰지만 경찰의 수사는 답보 상태일 뿐이다. 그러자 밀드레드는 매 순간 자신의 감을 바탕으로 행동에 나선다. 그녀는 안젤라의 사건을 경찰의 수사의지가 부족했을 거라는 판단으로 윌러비 경찰서장을 비난하는 광고판을 세웠다. 또 자신이 세운 광고판이 불타자 이는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경찰들의 짓이라 판단해 경찰서를 불태운다. 이렇게 하나둘씩 밀드레드는 스스로 정의를 집행해간다.

그러나 ‘쓰리 빌보드’ 속 그녀의 판단은 실제 사실관계와는 정반대다. 그녀가 저격한 윌러비 경찰서장은 수사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닌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어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또한 광고판을 불태운 이는 윌러비 경찰서장의 부하가 아닌 그녀의 전남편이었다. 이 모든 잘못된 판단은 밀드레드가 그녀에게 주어진 일부의 정보만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 ‘쓰리 빌보드’ 속 밀드레드의 사적제재는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사적제재의 한계를 지적한다. 미디어 속 보편적인 사적제재의 경우 독자나 시청자는 전지적 시점에서 모든 일들의 사실관계를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물들을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나눈다.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선한 주인공이 악을 응징하기 위한 일들을 정당화하고 그들의 성공을 응원한다.

하지만 사적제재가 벌어진 후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때도 존재한다. 마치 영화 속 밀드레드의 행동처럼 말이다. 실제 아르헨티나에서 리처드 카릴로라는 페루인이 살인 및 성폭행의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고 수감자들에게 고문과 성폭행을 당해 옥사했다. 그러나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이처럼 사적제재가 불완전한 사실에 따라 집행된다면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적제재가 선사하는 통쾌함에만 집중하면 현실은 어느덧 사적제재가 만연한 사회로 변질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사적제재가 만연한 사회에서도 통쾌함이 존재할지는 의문이다. 이제는 통쾌함 속에 가리어진 사적제재의 이면에도 집중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