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 빠른 토끼가 압도적으로 앞서자 토끼는 방심하며 중간에 잠을 잔다. 하지만 거북이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기어가 토끼를 제치고 승리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게으른 토끼가 아닌 성실한 거북이가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신영복은 이를 비판한다. “거북이를 얕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1등을 한 거북이도 나쁘다”며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는 거북이도 토끼의 자세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신영복은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는 더불어 삶을 제안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와 다른 태도가 요구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명문대와 비명문대 ▲수도권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끊임없이 심해지는 불평등 사회에서 우리는 도태되지 않게 아등바등 경쟁한다. 승자 독식의 한국 사회에서 생존경쟁은 일상이다. 당장의 생존이 급한 우리에게 ‘벗’와 ‘더불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가 돼 버렸다. 철학자 한병철 또한 “개인과 사회는 자폐적 성과기계로 변신했다”고 비판한다. 기계가 된 개인과 사회에게 더불어 삶은 쉽지 않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그저 어떻게 수많은 토끼들에게 뒤처지지 않을지에만 몰두하게 된다. 모두가 경쟁하라고 말하는 상황과 까딱하면 도태될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는 잠든 토끼를 깨워 갈 수 있겠는가? 얼핏 보면 신영복의 주장은 그저 동떨어진 유토피아와 같아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녹록지 않은 더불어 삶의 조건은 더불어 삶을 더욱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반증한다. 여름 교도소 좁고 더운 감방에서 20명의 사람이 부대끼며 잠을 자며 옆 사람의 존재 자체를 증오하게 된다. 그러나 겨울밤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딜 때 비로소 지난 여름밤 증오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이를 두고 신영복은 “증오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감옥을 드러내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다”고 강조한다. 벗이 나를 위협하는 적이 되고 적을 추월해야 한다는 우리의 사고는 결국 감옥의 모습을 한 거대한 사회 구조의 산물임을 깨달을 수 있다. 즉 더불어 삶이 어려운 것은 이기적인 인간 본성의 결과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는 사회 구조의 산물인 것이다.

 

신영복은 감옥 속에서 무한경쟁 사회라는 또 다른 거대한 감옥을 목격했다. 신영복은 20년의 길고 긴 감옥 생활 동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행했다. 교육학자 존 듀이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인 ‘지식’을 갖는다”고 말한다. 신영복은 갇혀 있는 감옥 속에서 사색이라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을 전했다.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 육체는 감옥에 있지만 정신은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는 육체는 자유롭지만 정신은 무한경쟁 사회라는 또 다른 감옥에 갇혀 있어 보인다. 신영복은 “공부는 망치로 하는 것이다”며 “갇혀 있는 생각을 깨라”고 이야기한다. 망치로 갇혀 있는 우리의 생각을 깨는 것이 또 다른 감옥을 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갇혀 있는 생각을 깨고 더불어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시작은 다름 아닌 ‘사색’이다. 그것이 바로 신영복이 말하는 공부이자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공부다.

<출처=돌베게>
<출처=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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