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디테일하고 현실감 있다” “대사 하나하나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누구나 겪어본 익숙한 상황과 곳곳에 심어진 공감의 요소까지 일명 ‘현실고증콘텐츠’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일상 속 공감대를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현실고증콘텐츠가 유튜브의 주류 채널로 자리매김했다.

 

현실고증콘텐츠 등장과 열풍

현실고증콘텐츠는 하이퍼리얼리즘 콘텐츠라고도 불린다. 누구나 겪어본 일상을 소재로 하며 현실감 있는 대사와 연기를 통해 대중의 공감을 끈다. 주로 상황극 형식으로 구현되는 현실고증콘텐츠는 ▲ASMR 콘텐츠 ▲쇼츠 ▲스케치코미디 ▲웹드라마 등 유튜브 콘텐츠와 결합해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스케치코미디로 실현되는 현실고증콘텐츠의 대표 주자는 채널 ‘너덜트’다. 일상의 소재에 약간의 과장을 더한 현실감 넘치는 에피소드 식 콘텐츠가 이들의 주력콘텐츠다. 평소 너덜트의 콘텐츠를 즐겨본다는 김민서(국문·3) 학우는 “카페에 갔을 때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수십 장의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신과 매우 똑같아 웃음이 났다”고 전했다. 홍경수(문콘) 교수는 현실고증콘텐츠의 핵심 요소로 현실과의 일치성을 의미하는 핍진성(Verisimilitude)을 꼽았다. “기존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웃음이라는 명시적 목표에 매달려 과장되거나 말초적 개그로 향한 데 비해 현실고증콘텐츠는 현실을 얼마나 잘 묘사하냐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웃음이라는 목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자연스럽고 편안한 웃음의 여지가 확보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현실고증콘텐츠가 웃음을 만들어 내는 방식

현실고증콘텐츠는 공감을 통해 편안한 웃음을 유도한다. 제작자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일상을 콘텐츠의 소재로 끌어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세심하게 관찰해 이를 콘텐츠로 담았다.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짧은 대화와 순간의 분위기를 구현함으로써 시청자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영상에서 발견한 우리의 현실은 웃음이 된다. 문혜원(국문) 교수는 “현실고증콘텐츠가 짧은 호흡의 연출과 디테일 잡기를 통해 ‘그럴 수 있겠다’는 개연성(Probability)을 끌어낸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느슨한 일상에 퍼져있는 수많은 순간의 장면을 짧은 영상에 집약해 담아내고 이는 시청자의 공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채널 ‘사내뷰공업’은 90년대생 15살 여중생 캐릭터의 이야기를 담은 “은정이는 열다섯”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90년대의 중학교 교실 속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아 어설픈 화장법을 실현하는 여중생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채널 ‘레블’은 학창 시절에 만났던 선생님의 외양과 행동을 ASMR로 묘사한다. 최여정(18) 씨는 “이 영상에서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발견했다”며 “말투와 옷차림까지 싱크로율 100%다”라고 전했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현실고증콘텐츠, 연혁을 되짚다

과거 코미디프로그램의 대표 주자였던 ‘개그콘서트’에서도 현실을 반영한 소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그콘서트의 황금기를 이끈 코너 ‘생활의 발견’은 고깃집과 장례식장 그리고 해수욕장 등 이별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심각한 대화를 하는 연인의 모습을 그린다. 일상의 디테일이 담긴 생활밀착형 대사를 통해 시청자의 웃음을 유도했다. 2020년 개그콘서트의 폐지 이후 코미디언은 유튜브로 무대를 옮겼다. 그러나 지상파에서 제작되던 개그 프로그램과 최근의 유튜브 콘텐츠는 유통 매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홍 교수는 “유튜브는 이른바 연출의 민주주의를 가져왔다”며 설명했다. “연출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방송되지 않았던 지상파 시대에서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연출의 자유가 주어졌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콘텐츠가 가진 힘은 방송 연출의 권력과 방송 심의 제도로부터의 해방에서 기인했다. 방송법의 규제를 받지 않던 유튜브는 표현의 범위가 더 넓고 수위의 제한이 없기에 웃음의 활력이 더 세다. 또한 현실의 변화를 민첩하게 잡아내어 빠르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채널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은 ‘도믿걸’과 ‘초심잃은 아이돌’ 그리고 ‘명품을 되파는 리셀러’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이는 현대사회에 놓인 여러 문제를 조명한다. ‘도믿걸’에서는 행인에게 ‘도(道)’를 믿는지 묻고 전도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젊은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도믿걸’과 같은 유형의 인물은 관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다분하기에 지상파 방송에서 쉽게 다루기 어렵다. 이 채널의 애청자 최은심(50) 씨는 “이 채널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비정상적 상황을 풍자하는 현 시대의 블랙코미디다”고 전했다. 홍 교수는 “현실을 비판하거나 반영하는 형식의 콘텐츠는 드라마의 성공 공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유튜브에서 성공한 콘텐츠들이 향후 더 큰 미디어로 확장된다면 바람직한 콘텐츠 생태계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더욱 현실적이고 질 높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수많은 제작자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을 운영하는 코미디언 강유미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 영상을 제작하는데 2주 정도 소요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에스테틱 샵 직원을 연기한 영상의 경우 현실감을 담기 위해 북한 문화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를 한 것은 물론 북한이탈주민의 감수 과정까지 거쳤다”고 전했다.

 

현실고증콘텐츠의 웃음, 과연 달콤한 웃음일까?

제작자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수많은 디테일을 영상에 심는다.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는 과장의 요소를 적절히 사용해 웃음을 유도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인기 영상 ‘2032년 감성카페’에서는 다 무너져가는 공사 현장이 감성적인 카페로 칭해지고 담배꽁초와 함께 넘치게 담긴 음료가 예술적인 ‘더티플레이팅(Dirty plating)’으로 여겨진다. 유명 카페의 인기 메뉴라며 유명세를 치른 더티플레이팅의 비효율을 꼬집는 것이다. 이는 극도로 사실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형태인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문 교수는 “현실을 과장해 보여주는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하고 있던 비상적적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며 “현실고증콘텐츠는 하이퍼리얼리즘의 목표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리얼한 묘사도 결국 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현실고증콘텐츠 화제성의 뒷면, 선 넘는 캐릭터화 논란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자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웹드라마 형식의 스케치 코미디 채널 ‘두리번TV’의 인기 콘텐츠는 ‘찐따커플 브이로그’다. 영상에는 일명 찐따라고 묘사되는 남녀가 등장하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한 여러 컨셉과 장치가 사용된다. 촌스럽게 꾸민 외양과 데이트에서 지나치게 돈을 아끼는 모습은 비하와 편향의 요소가 다분하다. 윤정인(사회·2) 학우는 “앞의 콘텐츠처럼 웃음을 목표로 특정 대상을 캐릭터화하는 과정에서 ▲목소리 ▲외모 ▲장애 ▲체형 등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항이 웃음으로 소비되는 사례를 종종 발견했다”고 했다. “이는 조롱과 희화화로 이어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이 충분하고 생각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문 교수는 “왜곡된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연출에 주의해야 한다”며 “제작자는 먼저 묘사하려는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분석을 우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개그콘서트가 한창 높은 주가를 달리던 2008년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개그콘서트를 ‘나쁜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 외모와 성별 그리고 특정 직업군 비하를 개그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이유다. 지속된 비판에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했고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던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은 한순간에 졌다.

 

누가 봐도 공감되는 우리의 이야기 ‘현실고증콘텐츠’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극적 또는 비현실적 콘텐츠에 실증이 난 대중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에 빠져들었다. 다만 지금 전성기를 맞이한 현실고증콘텐츠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유튜브와 OTT 플랫폼까지 방송의 범주에 포함시켜 규제받게 하는 방송법의 개정안이 이번 달 말 국회를 통과할 예정이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 환경 또한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순간 져버린 개그콘서트의 길을 밟을 것이냐. 혹은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길로 나아가 무해한 웃음을 피울 것이냐. 현실고증콘텐츠는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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