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4월 파업 도중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수세에 몰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원들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이렇게 외쳤다. “골리앗 위에 있는 우리 전원은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서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들의 투쟁은 5월 전국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이때 가두시위에 최루탄이 날아들고 전철역이 점거됐다. 하지만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았고 박수로 호응했다. 82m 고공에서의 극한 투쟁은 전국총파업의 발단이 됐고 민생 파탄에 신음하던 국민에게 울림을 줬다. 그렇게 일개 노동조합의 파업은 ‘골리앗 투쟁’이라 이름 붙여졌고 1990년 노동운동의 상징이 됐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과격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시위였지만 당시 국민은 이들의 투쟁을 문제 삼지 않았다. 1990년은 6월 민주항쟁이 끝난 지 채 5년도 안 된 시기였다. 화염병이 난무하던 민주화 시위에 익숙했던 국민들은 폭력을 수반한 투쟁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국민은 이들의 명분에 집중했고 지지를 보냈다. 30년이 지난 지금 대중의 집회에서 그때와 같은 폭력 시위는 찾아볼 수 없다. 국민들은 평화 시위를 통해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투쟁 방향을 중시하게 됐다. 노동조합도 투쟁의 명분뿐만 아니라 방법까지도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노동조합의 투쟁 방식은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폭력을 불사한 파업을 주로 투쟁하고 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에서 집회 도중 지나가는 비조합원 차량에 계란과 마이크 그리고 라이터를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집회 도중 발생한 폭력 행위에 대해 해당 지부의 간부는 그저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해 비노조원들의 동참을 호소했을 뿐이다”고 변호했다. 자신들의 파업에 동조하지 않는 비조합원 차량의 브레이크 호스를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폭력을 동반한 구시대적 파업 행태의 반복에 국민 여론은 등을 돌렸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우선 업무 복귀 후 협상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1%로 나타났다. 이들의 투쟁은 더 이상 국민에게 울림을 주지 못했고 이들의 파업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 파업 종료 후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이번 투쟁을 통해 안전운임제가 왜 필요한지 의제화됐다”고 말했다. 기존의 투쟁 방식을 고수해 국민 여론 확보에 실패했음에도 국민 여론 형성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이들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 투쟁 실패의 주요 요인임을 알고도 문제를 애써 마주하지 않으려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뉴욕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창고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아마존의 30년 무노조 성벽은 현장 노동자 스몰스와 파머의 기존 노동조합과는 다른 접근을 통해 무너졌다. 기존 노동조합이 여론 중심의 호소를 한 것과 달리 물류창고 앞에 천막을 치고 매일 노동자들과 대화하며 신뢰를 쌓아 목표를 달성했다. 정치 편향적 투쟁 방식에 대한 비판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MZ 세대들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동의될 것이다”며 반박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인정하기는커녕 경험이 부족하다며 젊은 층을 훈계하는 모습에서 시대 변화를 따라가고자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노동조합을 피해서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 투쟁의 명분만 타당해서는 안 된다. 그 방법도 합리적이며 충분히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시대에 맞게 투쟁 방식이 변화할 때 노동 문제 해결은 더 가까이 위치할 것이다.

<출처=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출처=현대중공업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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