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러 지자체에서는 연애 장려 사업이 쏟아지고 있다. 결혼을 넘어 연애마저 줄어드는 와중 인구 균형의 붕괴는 정부의 급선무 과제다. 지역 내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단체 만남을 주선하는 등 정부는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그 결과에는 의문이 남는다.

통계청의 ‘합계 출산율 발표’에서 한 관계자는 “1990년대생 초반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주 출산 연령으로 진입하면 출생아 수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단순히 90년대생이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란 전망이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원인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원래 그래’라고 단순히 구분 짓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청년 세대가 처한 사회적 상황을 바라봐야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경쟁 사회 속에서 효율을 추구해야만 하는 현세대에게 연애는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과거 고성장 시기를 살아온 부모 세대는 밥그릇 하나로 시작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었다. 하지만 중산층 부모가 제공하는 상승한 사회적 생활 수준 아래서 자라온 현세대는 저성장 국면을 맞이하며 희망보다 불안으로 점철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간다. 높아진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경제적 능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인 이행기는 더욱 연장되고 당연히 연애나 결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끼리 붙여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자율적인 선택이 당연한 세대에게 국가에 의한 강제는 불가능하다. 사회가 청년에게 연애를 권유하고 설득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연애할 상대나 함께 살 집이 아니라 연애할 여유다. 연애하기 가장 좋은 순간은 연애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행복할 때다. 자신에 대한 삶과 행복이 중요한 이들의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사회가 조성해야 할 사회는 연애하는 사회가 아니라 연애하기 좋은 사회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