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 1만5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여성 참정권을 외치며 뉴욕 거리를 행진했다. 이후 UN은 이를 기념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하게 됐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17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첫 문장이다. 하지만 그 인간의 범주에 여성은 제외됐다. 여성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여성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고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없었다. 이에 분개한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여성 권리 선언에 거센 반발에도 드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올라야 한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어야 한다”며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다. 마치 운명처럼 결국 드 구즈는 1793년 반혁명 혐의로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연단에 오르려는 여성이 역설적으로 단두대로 올려진 것이다. 드 구즈의 외침은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세기 후 여성들의 목소리는 다시 살아난다. 한 미국의 여성 노동자가 열악한 섬유 공장에서 작업하다 화재 사고로 불타 죽게 된다. 하루 14시간 고강도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 노동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다. 1908년 3월 8일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 거리로 나서 참정권 보장과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뒤이어 영국의 남성 노동자들도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하며 연대했다. “빵과 장미를 달라”던 노동자들의 외침으로 세계 각국에서 성평등을 위한 시위가 확산됐다. 이후 UN은 이를 기념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한다.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지금도 여전히 젠더 담론은 활발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이에 관한 찬반양론도 거세졌다. 이 상황에서 함부로 젠더 문제를 꺼내기는 쉽지 않다.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하면 ‘페미’로 공격당한다. 반대로 여성 인권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 ‘한남’으로 낙인찍힌다. 이렇듯 일상 속 젠더 문제에 대해 꺼내는 것조차 기피하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최근 SBS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의 한계 없는 도전을 응원한 양자경의 발언을 삭제한 것은 젠더 담론 기피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젠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논의의 연단에 오른 이들을 서로 비방하는 지금. 이는 드 구즈가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어야 한다”며 주장하다 화를 당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향해 진정으로 마주하고 대화하는 자세다. 1908년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성평등을 외쳤듯이 우리는 존중과 이해의 자세로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평등과 정의의 시계추를 움직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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