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불멸의 명대사를 남긴 만화 ‘슬램덩크’가 얼마 전 영화로 리메이크돼 극장 스크린에 등장했다. 과거 많은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흑백의 주인공들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다시 코트를 누비는 모습을 담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국내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역사를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해냈다. 시즌2 공개 발표로 많은 기대를 산 넷플릭스 드라마 ‘DP’와 ‘스위트홈’ 또한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리메이크 작품이며 배우 소지섭의 스크린 복귀로 관심을 모았던 영화 ‘자백’도 스페인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돌아온 리메이크 작품은 단연 콘텐츠 시장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콘텐츠 시장의 리메이크 열풍, 그 이유는?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 원작의 내용을 계승한 리메이크 작품이 열풍이다. 리메이크란 원작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 과정에서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지만 대체로 원작의 의도를 따른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세부적으로 리부트와 리마스터 등 다양한 종류로 구분되기도 하며 넓은 의미에서는 리메이크라는 용어에 포함된다.

리메이크 작품의 열풍은 실패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으로 관객을 확보하려는 콘텐츠 제작 업계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리메이크 제작 방식은 대중에게 한차례 검증을 마친 작품을 활용하고 원작의 팬층을 관객으로 유입시시키는 방법으로 흥행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리메이크 방식은 비용 절감의 효과도 갖는다. 우리 학교 남기웅(다산) 교수는 “리메이크 작품은 오리지널 콘텐츠보다 홍보 비용이 적게 요구되며 원작의 팬층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 제작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이러한 방식은 드라마 ’미생‘이나 영화 ‘신과 함께’ 등 과거부터 존재했지만 최근 OTT 플랫폼들의 경쟁이 과열되며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대중이 리메이크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주요한 이유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이다. 남 교수는 “대중에게는 기존에 선호하던 것에 조금만 변화를 줘도 즐거움을 느끼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며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종류의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도 이러한 심리를 자극하기 위함이다”고 밝혔다. 이승우(정외·4) 학우 또한 “기존에 재밌게 봤던 원작이 다른 형태로 재탄생하면 해당 작품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요구를 더 잘 반영하게 된 리메이크 콘텐츠 제작 방식의 변화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 평론가는 “이전에는 제작 과정에 제작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됐다면 최근에는 관객들의 관점이 반영되는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리메이크 콘텐츠가 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동규(경영·4) 학우도 “원작에 없던 에피소드가 추가되거나 결말이 수정되는 등 기존 팬층의 기대를 반영한 작품이 출시되면 더욱 흥미로운 것 같다”고 말했다.

 

각양각색 리메이크 콘텐츠, 그 다채로움 속으로

콘텐츠 시장에서 리메이크 제작 방식은 말 그대로 '다시 만든다'는 의미를 갖지만 콘텐츠의 형식이나 원작과의 연속성 등의 특징에 따라 그 종류를 세부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같은 기법이더라도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반영하기도 하며 때로는 기본적인 설정만 유지한 채 대폭 수정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웹툰 등 콘텐츠 형식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리메이크의 특징 중 하나다. 위와 같이 다양한 방식을 통한 리메이크 작품들은 현재 콘텐츠 시장의 한 축을 이루며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먼저 최근 가장 친숙한 리메이크 콘텐츠는 국내 웹툰과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콘텐츠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이태원 클라쓰’와 ‘유미의 세포들’ 그리고 ‘모범택시’ 등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며 흥행에 성공한 ‘사내 맞선’과 ‘재벌집 막내아들’은 웹소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남 교수는 “웹툰이나 웹소설의 경우 젊은 세대의 선호를 보다 잘 반영해 콘텐츠 제작사가 이를 리메이크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의 경우 그림이나 글로 표현된 스토리를 영상 매체로 재가공했다는 점에서 그 매력이 더욱 강해졌다고 평가받는다. 강승협(행정·3) 학우는 “과거 즐겨 봤던 웹툰과 웹소설의 주인공들이 3D로 재현된 점이 리메이크 콘텐츠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외 콘텐츠의 판권을 구매해 국내 콘텐츠 시장에 리메이크작을 출시하는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 남 교수는 “다른 문화권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은 대중에게 신선한 소재를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자백’과 ‘정직한 후보’는 각각 스페인과 브라질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처럼 해외 콘텐츠를 국내에서 리메이크하는 경우 보통 해당 국가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작품이 수정된다. ‘자백’을 관람한 조은광(국문·4) 학우는 “결말을 수정한 것이 인과응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의 정서와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과거 작품을 배우만 바꿔 재현한 영화 ‘동감’이나 한 차례 리메이크된 작품을 다시 리메이크한 드라마 ‘뷰티인사이드’ 등 다양한 형식의 리메이크 작품들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콘텐츠 시장의 다채로움을 더해가고 있다.

 

불가피한 원작과의 비교, ‘잘해야 본전’

많은 리메이크 콘텐츠가 흥행하고 있지만 유명한 원작을 리메이크했다고 해서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리메이크 콘텐츠는 문화 및 시대적 요소의 장벽에 부딪힐 수 있으며 창작과 모방 사이의 딜레마에 봉착하기도 한다. 또한 원작과의 비교가 불가피하고 특히 명작을 원작으로 선택하는 경우 그 부담감이 커 제작 업계에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리메이크 콘텐츠의 가장 대표적인 실패는 문화적인 정서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지 못했을 경우 발생한다. 먼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일본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를 리메이크한 국내 영화 ‘조제’는 원작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작과 달리 장애인인 여주인공을 수동적이고 불쌍한 인물로 표현한 점이 장애인에 대한 시대적인 인식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심야식당’의 경우도 식당의 대표를 의미하는 ‘마스터’라는 호칭이 국내 문화적 정서에 적합하지 않다는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남 교수는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주제 의식은 유지하되 필요한 요소는 각색하는 영리한 전략이 있어야 작품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리메이크 과정에서의 수정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경우 결말을 각색해 연출했지만 원작의 의도를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의 연결성도 부족하다는 시청자들의 조롱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원작을 각색 없이 재연출하는 것이 비판을 피할 답이 되지도 못한다. 스페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은 원작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했으나 창의성이 부족하고 내용이 뻔해 시시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 김 평론가는 “캐릭터 등 원작의 정체성에 훼손을 가하지 않도록 주의함과 동시에 대중이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리메이크 콘텐츠의 확산, 과연 긍정적인가?

이렇듯 리메이크 작품의 열풍은 콘텐츠 비즈니스 업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열풍이 제작 업계와 나아가 콘텐츠 문화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리메이크 콘텐츠의 확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리메이크 콘텐츠가 원작자와 제작자 그리고 대중 간의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리메이크 콘텐츠가 작품의 인기가 계속되길 기대하는 원작자와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하기 어려운 창작자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물로서 양측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원작의 팬층에게는 OSMU 방식의 팬서비스가 될 수 있고 새로운 관객에게 다양한 소재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웹툰을 드라마화한 ‘이태원 클라쓰’의 경우 콘텐츠 제작자에게 양질의 소재를 제공함과 동시에 다시금 웹툰에 대한 인기를 촉진하는 선순환을 가능하게 했고 콘텐츠 소비자의 니즈 또한 만족시켰다. 김 평론가는 “리메이크 콘텐츠가 하나의 장르로써 인정받아야 하며 연구와 지원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최근 OTT 플랫폼에서는 리메이크 콘텐츠와 더불어 그 후속편까지 출시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2019년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는 상위 열 개의 작품이 단 한 작품을 제외하고 전부 리메이크작이나 후속편이었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리메이크 열풍을 일종의 문화적 복고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복고 문화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남 교수는 “리메이크 콘텐츠의 확산이 창작의 활력을 잃고 더 이상 발전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관련 업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남 교수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마냥 긍정적인 전망을 내다보기는 어렵다”며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꾸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새 옷을 입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 오히려 원작의 감성을 훼손한다면 돌아오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리메이크 과정에서 어떻게 원작의 정체성을 살리는 동시에 새로운 시청자들의 기대를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이 고민은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원작의 정수와 변화된 대중의 기대를 모두 담은 리메이크 작품이 콘텐츠 산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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