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고용노동부는 주 최대 근로 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는 개편안을 확정했다. 정부가 근로자의 선택권 확대와 건강권 강화라는 달콤한 말로 포장한 개편안의 핵심은 일이 많을 때 몰아서 일하고 후에 몰아서 쉴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어오던 근로 시간 감축 기조와는 반대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 근로 시간은 1천9백15시간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5위를 기록했다. 2천 시간 이상 노동으로 OECD 1위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서는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우리가 꾸준히 근로 시간을 감축시켜 온 것은 국민의 행복도와 삶의 질 증진을 위한 노력이었다. 근로 시간 감축 기조는 세계의 흐름이기도 하다. 세계 15위 이내의 행복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28~33시간으로 주 4일제가 이미 일상화됐다. 이처럼 세계와 발맞춰 근로 시간을 줄여나가던 우리나라가 다시금 야근과 과로를 부추기는 사회로 역행하려 한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 국내 IT기업이 몰려있는 판교는 매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사옥에 불이 꺼지지 않아 '판교 등대'라 불렸다. 2020년 평균 연차 사용률조차 63.3%에 그친 대한민국에서 업무가 산더미처럼 남아있는데 미리 주 69시간을 꽉 채워 근무했다고 해서 정부의 말처럼 마음 놓고 장기 휴식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만에 하나 정부의 주장처럼 한 달 휴식 등 긴 휴식이 자유롭게 보장된다고 해도 문제다. 2017년 논문 ‘장시간 노동이 뇌심혈관계 질환에 미치는 영향: 환자-교차 연구’에 따르면 월 평균 40시간 근무하다 발병 1주일 전 52시간을 일한다면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 위험이 45% 높아진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에 69시간까지 일하는 건 극단적 가정이라며 살인적인 연속 근로를 합법화하려 한다. 이 논리는 살인은 극단적 가정이니 살인을 합법화하자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법은 극단적 상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을 때 존재가치가 있다. 죽기 전까지 일하다 병들어 갖는 오랜 휴식이 의미가 없음은 당연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 1백20시간 노동 발언을 시작으로 지금의 주 69시간제까지 주당 근로 시간을 늘리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자유로운 근로 시간 선택권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밝혀왔지만 현시점에서는 쉴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야근으로 점철된 사회를 만드는 정책에 불과하다. 정부는 근로 시간 개편을 논하기에 앞서 무엇이 진정 근로자를 위한 일인지 세심히 살피고 숙고하기 바란다.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