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 글로리’나 ‘모범택시’와 같이 복수를 다루는 콘텐츠가 흥행하고 있다. 대중은 용서로는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으며 복수만이 피해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우아한 거짓말’은 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렇다면 과연 책 속에서 가해자를 용서한 피해자는 구원받았을까. 

우아한 거짓말은 밝고 착했던 막내딸 천지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시작한다. 엄마와 언니 만지는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믿음 아래 가려져 있던 천지의 아픔을 알게 된다. 천지는 목을 맬 때 사용했던 줄과 같은 붉은 색의 털실 뭉치들 속에 마지막 쪽지를 남긴다. 다섯 개의 털실 뭉치 속에는 사랑하는 엄마와 언니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가해자 화연과 방관자 미라를 용서하고 떠난다는 말이 담겨있다. 화연과 미라는 털실 속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용서를 통해 반성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이야기는 따뜻하게 마무리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야기 곳곳 그녀의 독백은 사실 그녀가 누구도 제대로 용서하지 못하고 떠났음을 보여준다. 모두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나쁜 아이라고 자책한다. 종교는 용서를 최고의 미덕으로 꼽고 전문가들은 범죄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극복할 수 있고 말한다. 하지만 용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내 몸이 너무 무거워 이만 떠난다’는 그녀를 더욱 버겁게 짓눌렀을지도 모른다.

정신분석가 앨리스 밀러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 혼자 행하는 무조건적인 용서는 커튼을 쳐 현실을 가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용서하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성급한 용서를 택한다. 이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 때문이 아닌 가해자로 인한 고통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복수에 대한 열풍 또한 효용 없는 용서에 대한 반발심으로부터 촉발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용서의 효용을 믿지 못하게 된 이유는 용서가 피해자를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서를 위한 용서로 가해자는 용서받고 피해자는 구원받지 못했다.

천지는 다섯 개의 털실 중 마지막 털실에 스스로에 대한 용서를 담았다. 누구보다 착했던 아이가 유일하게 용서한 이는 가해자들로부터 사과받지 못한 채 용서라는 관용을 베풀 수밖에 없던 가여운 자신뿐이었다. 복수가 피해자의 구원이 될 수는 없다. 상대에게 자신과 같은 모양의 상처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처를 계속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서조차 버거운 피해자에게 용서를 권하는 건 그 책임마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지우는 것이다. 우리는 용서해야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괜찮아져야 비로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피해자 홀로 하는 용서는 우아한 거짓말일 뿐이다.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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