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면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는 미디어파사드 작품을 보기 위한 인파가 몰려든다. SNS에만 접속해도 관련된 다수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뜨겁다. 이는 서울이라는 지역 혹은 크리스마스라는 시기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과학관과 아이스링크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한 대전 신세계 Art&Science에도 오픈과 함께 많은 인파가 모였다. 이처럼 많은 백화점이 단순한 쇼핑이 아닌 체험과 여가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며 다양한 문화를 복합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복합문화공간의 등장: 백화점의 생존전략과 이미지 중심 소비

최근 재단장한 ‘더 현대 대구’는 매장 면적을 15% 줄이고 문화예술 관련 시설을 4배 이상 늘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롯데백화점은 본점 1층에 ‘커넥티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마련해 매달 테마에 맞게 준비한 독립 서적들을 전시하고 방문 고객이 직접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 보는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많은 백화점이 기존 시설에 문화시설을 증설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는 백화점의 생존전략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19와 고금리에 따른 소비의 위축이 백화점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50년 넘는 역사의 일본 도큐백화점 본점과 후지마루 백화점이 최근 폐점했고 국내 향토 백화점인 대구백화점 본점은 2021년 8월 폐업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백화점은 복합문화공간을 형성해 소비자를 밖으로 끌어내는 전략을 폈다. 문화예술 작품 전시 등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해 소비자의 유입과 체류 시간을 높여 소비를 유도한 것이다. 이 전략은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 체질 개선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한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전년 대비 42.9% 증가한 4천9백8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신세계는 사상 최대 실적인 6천4백5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김민규(문콘) 교수는 “복합문화공간화의 목적은 소비자를 더 오래 머물게 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한상(사회) 교수는 “팬데믹으로 소비자 역시 OTT와 스마트 디바이스 조합의 편리한 오락 문화가 줄 수 없는 규모와 다양성의 복합적 경험에 대해 목말라 있었을 것이다”며 성공 배경을 설명했다.

변화된 소비심리 또한 백화점의 전략과 맞아떨어졌다.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커피를 마시더라도 단순히 커피라는 재화를 구매하는 게 다가 아닌 브랜드를 소비한다. 중앙대학교 주은우 교수는 “현대인의 소비 활동은 단순히 물질적 재화를 구입해 쓰는 것을 넘어섰다”며 “이제 상품은 이미지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비심리가 백화점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며 전략이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백화점이 소비자에게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단순히 상업적 매출을 올리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이제 백화점은 더 이상 단순히 명품 브랜드가 위치한 공간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서 기능한다.

 

복합문화공간 파헤치기

백화점은 미술 작품 전시관과 자연 친화적 공간 그리고 체험형 상점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구축했다. 백화점의 공간 브랜딩은 기존에 존재했던 음식점과 단순한 휴게 공간을 넘어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먼저 백화점은 미술 작품을 전시해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더 현대 서울은 지난해 8월 K-팝 팝업스토어와 신차 전시 그리고 아트 페어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또한 더 현대 서울을 대표 공간으로 여겨지는 '알트원'(ALT.1)‘에서는 오픈 직후부터 앤디 워홀의 대규모 회고전인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과 ‘비욘도 로드’ 그리고 포르투갈 사진작가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국내 첫 전시 등 수준 높은 전시회를 진행했다. 다섯 번의 전시 동안 거쳐 간 작품만 9백여 점에 달한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여러 지점에서 주기적으로 전시회를 진행하며 전국 롯데백화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만 여섯 건이다.

실내에 자연 친화적 공간을 구성해 소비자들의 편안한 쇼핑을 보조하기도 한다. 더 현대 서울은 12m 높이의 폭포와 녹색 공원을 실내에 조성해 자연 친화적 쇼핑 환경을 만들었다. 우선 천장을 전부 유리로 만들어 1층까지 햇살이 도달할 수 있도록 했다. 5층에 조성된 녹색 공원은 3천3백㎡의 넓이로 천연 잔디와 나무 30여 그루 그리고 꽃으로 꾸며졌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실내 쇼핑을 하면서도 자연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힐링할 수 있다.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는 카이스트 연구진과 손잡고 만든 체험형 과학관과 3천4백 평 규모의 옥상정원 그리고 아쿠아리움 등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체험형 매장을 통해 소비자의 오감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롯데백화점은 중동점과 울산점에 대규모 체험형 인테리어 매장을 조성했다. 소비자들은 모델하우스처럼 꾸며진 매장에서 자유롭게 만지고 앉아보며 상품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잠실점과 동탄점 그리고 의왕 타임빌라스점에는 고객이 골프채를 골라 시타 할 수 있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백화점의 복합문화공간화는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대구 현대백화점에서 진행된 ‘아이다프(iDaf)22 프리뷰 인 더 현대’에서는 하루 평균 1천5백 명 이상의 방문자를 기록하며 몇몇 제품은 실제 판매로 이어졌다. 김 교수(문콘)는 “최근 SNS에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문화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렇게 증가한 관심에 힘입어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한 '2022 화랑미술제'에서는 2030세대들이 VIP 오픈에 먼저 입장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는 '오픈런' 현상도 나타났다. 단국대학교 김지훈 교수는 “가능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세계가 대중들에게 보여질 기회가 생기는 것은 문화예술생태계의 저변 확대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며 “복합문화공간이 문화예술의 발전 및 관심 증대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말했다.

 

반짝이는 백화점 뒤 어두운 그림자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달리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가 복합문화공간을 만든 대기업에 지나치게 순종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 교수(사회)는 KT&G 상상마당 시네마를 예로 들며 “복합문화공간에서 쉽게 밝은 전망을 찾기 어렵다”고 우려를 표했다. KT&G 상상마당 시네마는 독립영화나 실험적 영화를 전문가들이 프로그램하는 공간이었지만 운영권을 지닌 기업이 갑작스레 새로운 방향성을 주도해 복합문화공간의 생태계를 한순간에 허문 사례다. 지난 1월 KBS 보도에 따르면 광주신세계가 대형 프리미엄 백화점 신축을 추진하면서 시민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조성한다고 밝혔으나 광주광역시에 제출한 계획서상 문화시설 면적은 1.5%에 불과했다. 이처럼 시민사회가 공사로 인해 예상되는 교통혼잡 등의 문제까지 감수하면서 소규모 문화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복합문화공간이 인구가 많은 수도권과 대도시 위주에 조성되며 지방의 문화 소외 현상을 부추긴다는 지적 또한 거론된다.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연감’에 따르면 전체 시각 예술 전시의 48.7%가 수도권에서 이뤄졌고 연극은 73.7%가 서울에서 진행되는 등 수도권 편중 현상이 나타났다. 주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조성한 공간의 방향성을 강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복합문화공간은 많은 사람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 됐기에 사회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생존전략으로 형성된 복합문화공간이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간 자본이 구성한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의 이윤추구 자체를 나무라거나 제한할 수는 없기에 전문가들은 문화 및 예술 공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 수립과 적극적 지원 그리고 복합문화공간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화예술계와 이를 향유하는 대중 그리고 기업까지 모두가 함께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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