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쇼>, 짐캐리 주연

 

플라톤은 세상의 일을 간접적으로 판단하는 인류를 ‘동굴의 비유’로 표현했다. 온몸이 결박당한 채 강제로 동굴의 안쪽만을 바라보고 있는 죄수들이 있다. 죄수의 등 뒤에는 가슴높이의 담이 존재 하고 그 뒤엔 불이 있다. 죄수들은 벽과 불 사이의 길로 왕래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동굴 안쪽 벽에 비친 그림자가 소리를 낸다고 착각을 할 것이다. 그림자와 동굴 벽에 부딪친 소리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차원의 것이며 동굴과 불 뒤의 실제 물체들은 이해해야 하는 것들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을 벗어나 그림자와 소리의 실체를 보게 되는 한 철학자를 가정했다. 이 철학자가 동굴 밖에서 본 진짜 사물 자체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 사상인 이데아라는 개념이다. 이데아는 특정한 사물이 없어져도 계속해서 존재하는 사물의 모범이자 원래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철학자는 원형(이데아)을 보고 동굴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모상의 세계라는 것을 알리려 하지만 동굴 안 사람들은 실재(원형)를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을 턱이 없다. 플라톤은 모상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을 참된 존재로 인도해주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철학자와 이데아를 보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이 존재하는 ‘동굴의 비유’와는 반대로 혼자만 세계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 (짐 캐리 분)이다. 주인공 트루먼은 씨 헤이븐이라는 거대 인공 도시에 살고 있다. 씨 헤이븐은 오직 트루먼을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스튜디오다. 트루먼은 태어나자마자 쇼의 주인공이 됐고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있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배우다. 부모님과 오랜 친구 심지어 아내마저 계획된 대본에 따라 행동하며 트루먼을 속이고 있는 중이다. 플라톤이 트루먼을 본다면 동굴 속에 홀로 남겨진 죄수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뒤집어진 동굴의 비유’인 셈이다. 철학자만 진짜 사실을 아는 동굴의 비유보다 더 잔인한 설정이다. “이 많은 세상사람 중에 홀로 진실을 모르다니!” 트루먼은 이웃들에게 함박웃음을 보이며 보험사로 출근하고 매일 똑같은 신문을 읽는 틀에 박힌 일상을 보낸다. 마른하늘에 스튜디오용 조명이 떨어지는가 하면 아내는 대화 중에 뜬금없이 텔레비전에 나온 광고 대사를 말하지만 트루먼은 자신이 쇼의 주인공이라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스튜디오만이 가질 수 있는 어색함을 발견해 내지 못해 진짜 세계(실재)에 대한 익숙함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요트를 타다 물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트루먼은 혼란을 겪게 된다.

그 후 트루먼은 라디오 혼선으로 흘러나오는 배우들의 무전을 듣고 자신의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니라는 의심을 시작한다. 트루먼이 모상의 세계를 깨닫고 진짜 세계로 향하는 시도는 우리에게 ‘우리가 주어진 삶을 그대로 순응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 플라톤이 살아있었다면 우리에게 던질 질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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