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기레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기자들은 앉아서 글만 베끼고 특종만 찾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선 넘은 기자의 질문에 화가 난적도 있다. 기자에 대한 불신은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뉴스는 소통과 공감이 결여됐고 양산성의 기사가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나는 언론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학보사에 들어오고 난 뒤 편견이 무너졌다. 언론은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663호에서 우리 학교 장애 학우의 어려움을 취재할 때 언론의 소중함을 체감했다. 장애학생에겐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글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독자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끊임없이 펜을 부러뜨리며 보다 더 좋은 글을 쓰기위해 노력했다. 단 한명이라도 필자의 글을 읽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면 성공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언론의 가치는 상당하다.

언론혐오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책임감이 생겼다. 이제는 언론의 무게감을 체감한다. 학보에 실리진 않았지만 오보를 범할 뻔한 적 있다. 교내 익명사이트 ‘에브리타임’에서 한 익명 학우의 제보를 맹신 해서다. 그러나 사실무근의 정보였다. 한 번의 실수로 한 사람을 매도할 뻔했다. 이로 인해 필자의 글을 꾸준히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소한 잘못된 정보나 문장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쉽게 죄인으로 낙인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 기자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가끔 무섭지만 달갑게 듣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마감을 할 때마다 글에 대한 고집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학생회관 입구에서 바닥에 떨어진 채 비에 젖은 신문을 본 적 있다. 화가 북받쳐올라 물기를 털고 제자리에 뒀다. 학보를 바닥에 버린 이에게 증명하고 싶다. 결코 우리 학보는 바닥에 버려질 정도로 가치가 없지 않다고 말이다.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선 기자 혼자의 역량으론 부족하다. 학보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언론의 위기에서 우리의 학보를 읽는 독자들에게 정말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번 기자일기가 곧 정기자가 되는 나에게 다짐의 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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