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에 조지 오웰이 발표한 ‘동물농장’은 소련의 상황을 동물이 운영하는 농장에 빗대 풍자한 소설이다. 존스 농장에 살던 동물들이 존스의 가혹한 농장 운영에 혁명을 일으켜 직접 운영하지만 결국 혁명을 주도한 지배층의 폭정으로 이어지며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망해가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많은 장치들을 실제 소련에서 가져왔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동물농장의 집권층은 돼지들이다. 특히 돼지 스퀄러는 혹세무민하며 여론을 집권층에 유리하게 만드는 나팔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마치 소련과 러시아의 중앙 집권화된 미디어 권력을 보는 듯하다. 더 나아가 열심히 일하는 국민은 등한시하고 공격적인 정치만 남는 ‘농장’은 결국 몰락한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스탈린주의로 가득 찬 소련은 스탈린 1인 독재가 빛나는 국가였지만 혁명으로 인해 무너졌다. 푸틴은 열심히 전쟁을 통한 영토 수복을 부르짖으며 푸틴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곳곳에서 반전시위를 하는 등 벌써 균열이 되고 있다. 요즘 러시아는 마치 소련을 보는 것 같다.

특히 푸틴이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며 유사성은 더욱 더 짙어진다. 2011년 러시아 총선에서 총 득표율이 146.5%를 달성했다. 국민의 수보다 절반이나 더 많이 투표한 선거를 통해 정부를 장악한 지도층은 국가 대부분의 산업을 ‘올리가르히’라 부르는 정계와 끈이 있는 인사들로 장악시켰다. 마치 동물농장의 돼지들처럼 러시아 국민의 일자리와 귀를 푸틴이 쥐게 된 것이다. 마치 과거 역사와 같이 반 스탈린 운동이 벌어지듯 러시아를 소련의 마지막 시간으로 시곗바늘을 돌리고 있다.

러시아는 혁명을 통해 민주국가로 변했다고 주장하지만 체제만 교체한 낡은 국가에 불과하다. 정보 당국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시민들은 아무도 반발하지 않는다. 반발한다면 나폴레옹이 아사시킨 닭들처럼 굶어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본인이 싫어하면 무차별 암살을 하는 것이다. 마치 ‘폭주 기관차’ 같다. 세계의 적이 된 폭주 기관차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존속할 수 없다.

동물농장에서는 체제를 위해 많은 이들이 부역한다. 집권층은 무능하고 집단은 멍청했다. 피지배계층의 답답함은 소설을 읽는 내내 화를 토해내게 만든다. 소련도 그러했고 러시아도 그렇다. 피지배계층들은 모두 현안에는 눈을 돌리고 지배계층을 찬동하기만 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복서부터 그저 순한 양들에 더해 직접적인 불이익에만 항거하고 몰락해버린 닭들과 현실 도피를 하는 문약한 지식인 벤저민까지.

지금의 러시아는 어떤가? 우리는 러시아의 미래를 다 알고 있다. 피지배계층의 무기력함과 현재를 바꾸려 하는 의식이 없는 ‘썩은 피지배계층’은 나라를 망친다. 현재 푸틴이 이기지 못할 싸움을 무리하게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이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러시아의 현재를 비판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모두 러시아의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지 않으면 결국 또 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러시아의 ‘동물농장’ 시스템을 끌어 내리지 않는 한 제2의 푸틴은 물론이고 제3의 소련과 부차적으로 반복되는 무수히 많은 혼란은 뻔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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