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지역에 비해 비강남 지역의 주거환경이 열악하다“

지난달 오세훈 서울시장은 토론회에 나와 외친 한마디로 구설수에 올랐다. 오 시장은 토론에서 부동산 정책을 말하는 내내 서울 지역을 강남과 비강남으로 구분해 말했고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오 시장이 부자와 약자를 계급화했다고 비난했다. 박 후보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비강남’이라는 말에 상처받는 강북 주민이 있을 수 있다. 박 후보는 그들을 대변하며 오 후보에게 정당한 비판을 날린 셈이다. 하지만 박 후보의 논리대로 강남과 비강남을 구별 짓지 않고 모두 같은 서울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행복해질까. 강북과 강남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강남이 강북보다 살기 좋다는 사실. 서울이 지방보다 살기 좋다는 사실. 지방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는 사실. 갑오개혁 이후 눈에 보이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제는 실존하듯 우리 사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존재한다. ‘비강남’이란 어휘를 없앤다고 해서 강북 사람들의 주택이 타워팰리스로 바뀌진 않는다. 진보의 최우선 가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현재 사람들이 평등하지 않다는 걸 먼저 깨달아야 한다. 나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현재 상태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북도 살기 좋은 곳인데? 지방도 서울만큼 살기 좋은 곳이야. 지방이 뭐 어때서? 지금 이 말들은 역린을 건드린 망언일까? 사실이다. 이미 존재하는 차이를 언어로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차이의 존재를 알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는 건 위선이다. 모두가 아는 말을 체면을 위해 속이고 위상을 위해 숨길 필요 없다. 부끄러운 점 하나 없는데 무엇을 숨겨야 하나.

자신이 정치인이라면 강북과 강남이 차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을 비난하기보단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한 정책을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강북권 구민으로써 강북도 충분히 살기 좋은 곳이라며 응원해주는 정치인보단 강북 지역을 개발하고 건설하는 정치인이 훨씬 낫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대상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할 때 바뀔 수 있다.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바라보며 별로 대단하지 않은 사람. 나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 깎아내린다면 뭐가 달라질까. 변화는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찾아온다. 언어로 숨기고 위선으로 위로하기 보단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사회가 다가오길 바란다. 우리 사회 전반에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따라잡기 위해 움직이는 정신이 뿌리박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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