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를 걸어 다니다 ‘전태일길’이라는 표지판을 봤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서치된 건물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생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설치된 길이었다. 그 길엔 달랑 전태일 열사의 삶을 알리는 기념비 하나만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기념비를 보지도 않고 쉽게 지나쳐갔다. 하지만 노동 운동에 투사하며 온몸을 불태운 그의 정신을 지나쳐가선 안 된다.

지난 13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주 52시간제” 중소기업 전면 적용을 연기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주 52시간제는 1주일 당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이다. 이 법은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의 노동시간은 OECD 1~2위를 다툰다. 공기업과 대기업은 이미 시행 중이며 내년부턴 중소기업에도 적용될 예정이었다. 윤 의원은 여기에 팬데믹 상황으로 중소기업이 힘든 상황임을 감안해 제도 시행을 1년 늦출 것을 주장한 것이다.

물론 중소기업이 힘든 상황인 것은 동의한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2020년부터 도입 예정이었던 주 52시간제를 1년간 미뤘었다. 주 52시간을 다시 한번 유예하는 것은 사람별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윤 의원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전태일 정신’을 운운한 것은 문제다. 전태일 열사의 삶을 보면 주 52시간 유예가 전태일 정신을 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는 ‘1일 8시간 주 48시간 근로’가 적힌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며 노동운동 단체를 만드는가 하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정신은 법을 준수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었다. 전태일 열사는 평생 노동 운동에 투사하며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그의 죽음 후 50년간 대한민국은 고공 성장을 이뤄냈고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강대국이 됐다. 그 속엔 전태일 열사의 의지를 이은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 신성한 의지를 중소기업의 의견을 대변하는데 사용하는 건 전태일 열사의 의지를 짓밟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듯 전태일 열사의 뜻이 무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개발도상국에서나 벌어질 노동 유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택배기사가 일하던 중 숨졌다. 택배기사는 죽기 전날 택배의 양이 너무 많다며 호소했다. 올해 사망한 택배기사만 벌써 10명째다. 이에 CJ대한통운은 대국민 사과까지 펼치며 분류작업을 개선할 것이라 밝혔다. 택배기사의 과로 문제는 수년째 맴돌았고 개선하라는 말도 수년째 있었지만 변하는 건 없다. 몇 명이 더 죽어야 개선될까.

언제까지 기업은 갑이고 근로자는 을로 지내야 할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의 단말마가 무색해진다. 전태일 열사의 뜻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잘못된 법에 맞서는 데 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택배 노동자들의 뜻을 대변하고 법을 고치는 데 활용돼야 한다. 진정으로 그의 정신을 잇고 의지를 이어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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