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노동 극악의 아르바이트

최후의 노동 극악의 아르바이트

상하차 절대 다녀오지 마세요.

상하차 갔다가 4시간 만에 추노했다...

인터넷에서 ‘상하차’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문구들이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이하 상하차)는 아르바이트 중 가장 힘든 난이도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10시간 넘게 쉬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들락날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CJ대한통운의 물류센터에서 세 차례나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 있다. 최근 물류센터에서 집단 코로나 확진이 벌어지면서 상하차의 안전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물의가 벌어지고 있다

상하차와 관련해 터지는 사고를 보며 도대체 상하차가 어떤 아르바이트이며 얼마나 힘들지 궁금해졌다.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거나 휴식 시간이 보장되지 않고 사고가 발생한다는 상하차와 관련된 풍문을 들으며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인지 궁금해졌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직접 상하차에 뛰어들어 상하차 아르바이트에선 어떤 업무를 해야 하며 상하차 아르바이트의 일과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체험해보고자 한다.

1. 아르바이트 접수 시작

우선 아르바이트 소개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접수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사이트에 ’쿠팡’이라고 검색하니 수도권에 있는 수많은 물류센터가 검색됐다. 여기서 통근버스를 탈 수 있는 지역으로 검색범위를 줄인 후 소개 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양식을 따라 지원서를 보냈다. 근무지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이름 ▲생년원일 ▲근무희망일 ▲희망통근버스 노선을 보내면 지원할 수 있었다.

문자를 보내고 서너 시간이 지나자 출근을 해도 된다는 문자가 왔다. 필자가 일할 곳은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곳이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45분까지 일하는 조건이었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자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다음날 새벽 장갑과 마실 물 그리고 사탕 등 몇 가지 짐을 챙기고 셔틀버스를 탈 쌍문역으로 향했다.

아침 6시 10분이 되자 물류센터로 향하는 통근버스가 왔고 1시간 반을 달려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 체온을 재고 이름을 확인한 뒤 신분증을 관리자에게 냈다. 신분증은 퇴근 시 돌려준다고 했는데 아르바이트 도중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것처럼 보였다. 개인의 신분증을 쉽게 가져가는 것에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했다.

8시가 되자 신규 채용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았다. 안전교육에서 음식물은 반입이 금지되며 물만 반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택배를 뜯어서 음식을 몰래 먹는 사람이 있어 만들어진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택배의 주소를 찍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따로 허가받은 휴대전화가 아니면 소지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휴대전화와 집에서 가져온 간식은 따로 배치된 사물함에 넣어야 했다. 일하던 중 힘들어질 때 먹으려고 들고 온 간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절도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과한 제약을 가하는 것 같았다. 업무 중에 작은 사탕 하나 허용되지 않다니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2. 생각보다 쉬웠던 오전

신발을 안전화로 갈아 신고 배치된 곳에 오니 관리자가 왔다. 그는 일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해줬다. 우리가 맡은 일은 레일에 담당 지역의 택배가 오면 배정된 장소에 쌓아놓는 것이었다. 우리 팀은 서울 서초구와 수원시를 맡았다. 택배는 ‘오전택배’와 ‘일반택배’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조장이 “잘못 배치할 관리자가 한소리 한다”고 했기 때문에 잘 배치해야 했다. 또한 앞쪽에는 무거운 물건을 두고 뒤쪽에는 가벼운 물건을 두어야 하는 방침이 있었고 짐이 모두 쌓이면 랩으로 씌워야 했다.

오전에는 택배가 생각보다 너무 없어서 놀랐다. 거의 5초에 하나가 오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다른 지역 담당인 경우가 많아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앉거나 쪼그려 있지 못하게 했다. 앉아서 일하는 관리자가 노동자에게 앉지 말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한산한 시간대가 지나고 오전 10시가 되자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일 위로 택배가 한가득 쏟아졌다. 옆에서 택배를 올리면 다른 사람들은 그걸 다시 분류하고 쌓았다. 내가 맡은 지역이 수원이다 보니 우리 학교로 향하는 택배도 종종 보였다. 숨돌릴 틈도 없이 택배가 계속해서 쏟아져 왔다. 상하차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택배를 집어 던지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친 몸으로 몰려드는 택배를 맞이하다 보니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디펜스 게임’ 마냥 쏟아져 오던 택배의 행렬이 멈췄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레일이 멈추더니 사람들이 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된 것이다. 이 정도 강도라면 내일 또 아르바이트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차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엄살을 피운 거라 생각했다. 한편으론 상하차가 힘들다는 식으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이렇게 편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들었다. 물론 오후가 되자 다 쓸데없는 걱정이란 걸 깨달았다.

3. 오전의 방심을 후회하게 만든 오후

점심은 일회용 도시락 용기에 급식처럼 반찬과 밥을 담아가는 식이었다. 학식과 맞먹는 퀄리티였다. 방역 때문에 식당은 자리가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고 띄어서 앉아야 했으며 밥을 먹기 전 이름과 전화번호를 작성해야 했다. 오랜 시간을 일하고 나서 밥을 먹으니 밥맛이 제대로였다. 빠르게 한판을 비운 후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셨는데 모두 3백 원 정도의 싼 값에 판매 중이었다.

일은 12시부터 시작이었다. 5분의 준비시간을 고려하면 빠르게 돌아가야 했다. 다시 레일 앞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배차가 들어오고 택배가 다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택배를 블록 쌓듯 쌓았다. 조금이라도 잘못 놓으면 쓰러질 것 같았다. 불안하게 휘청이는 상자와 같이 몸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서질 듯했다. 앉지 못하니 발이 계속 저려왔다. 잠깐 앉으려고 하면 관리자가 지적하곤 했다. 택배가 없을 때도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처사라고 생각했다.

택배차 한 대 분량의 물량 정리가 끝나면 높게 쌓인 택배를 랩으로 싸서 지정된 위치로 보내야 했다. 물량을 다 보내고 나면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다시 다른 택배가 쏟아져 왔다. 오전과는 업무 강도가 차원이 달랐다. 계속해서 쏟아져 오는 택배를 보니 수나라 1백만 대군에 맞선 을지문덕 장군이 떠올랐다. 정리하고 또 정리해도 물량이 끝이 없었다. 무거운 짐을 나르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물을 왜 택배로 시켜먹는 걸까. 제발 정수기 좀 설치했으면 좋겠다. 쌀 포대도 좀 사서 쓰자. 음료수를 왜 20개씩 시킬까. 이제야 상하차를 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 말라는 건 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간힘을 쓰고 죽어라 일을 하다 시계를 봤더니 겨우 1시 40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일한 시간만큼 더 일해야 한다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잠깐 숨을 고르니 다시 택배가 몰려왔다. 방금 전 택배가 수나라 대군이었다면 이번에는 6.25 전쟁 때 중공군이다. 가벼운 택배들이었지만 인해전술로 몰아붙였다.. 가볍다고 해도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벼운 만큼 택배가 더 높게 쌓였고 더 빨리 랩으로 싸서 보내야 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일을 보니 영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이 된 느낌이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때의 고통과 괴로움이 떠오른다.

4.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마침내 끝이 났다. 5시 30분쯤이 되니 택배가 줄기 시작했다.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시 45분. 끝날 시간이 됐는데 관리자의 입에서 끝났다는 말이 안 나왔다. 앉으려 하니 또다시 지적한다. 6시가 겨우 넘어서야 모든 일이 끝났으니 이제 가라고 했다. 원래 예고됐던 시간보다 길어졌다. 사물함에서 다시 짐을 챙기고 신분증을 돌려받았다. 쉬지도 못하고 계속 서 있었더니 발이 쓰라리면서 화끈거렸고 무거운 짐을 계속 들었더니 팔이 후들거리고 잘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통근버스를 타고 1시간 반 가까이 지난 8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나 오후 8시까지 총 14시간 동안 고생한 셈이다. 이렇게 해서 번 돈은 12만 원. 이마저도 공휴일 수당 1.5배가 붙어서 나온 액수다. 평소대로라면 8만 원을 받는다는 뜻인데 고생만 하고 돈은 얼마 받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끝나고 나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법적으로 50분을 근무하면 1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쿠팡에선 점심시간 1시간과 휴식시간 10분을 제외하면 휴식 시간이 없었다. 노동 강도도 강도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휴식시간도 보장받지 못할뿐더러 앉아 있는 것조차 제한받았다.

문득 이 힘든 일을 왜 하는가 싶어 같이 일한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날 같이 일했던 한 사람은 “코로나 때문에 할 일이 없고 노동 유연성이 좋아서 일한다”고 답했다. 내가 일한 쿠팡은 그나마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일반적인 물류센터는 이것보다 더 심한 강도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8년 CJ대한통운은 청소년을 심야에 불법 노동시키던 중 적발된 적 있다.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우리들의 로켓배송과 총알배송 뒤엔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노동 착취와 불법 행위가 오가고 있었다. 휴식 시간은 제대로 보장되지도 않았고 앉지도 못하고 노동해야 했다. 법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런 아르바이트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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