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발간된 1984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근미래 국가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국민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소설에서 말한 1984년이 되었을 때 세상은 평화로웠다. 조지 오웰이 경고한 오세아니아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해 첫날 예술가 백남준은 ’Good Morning, Mr Orwell!‘이란 작품을 만들어 세계는 평화로우며 오웰이 경고한 1984는 오지 않았음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6년 후인 2020년 1984는 현실이 됐다. 디지털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감시 체계는 점점 발전해가고 있다. 중국이 개인 정보와 감시 카메라를 활용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제2의 1984라는 뉴스가 나오곤 한다. 이는 중국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2013년 미국은 프리즘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를 도청 및 해킹했다는 사실이 들통난 바 있다.

1984 속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는 국민을 감시하고 국가를 지배한다. 이 모든 것은 텔레스크린이라 불리는 감시 장치가 있기에 가능했다.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되며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은 납치하여 고문당한다. 공공장소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은 국민들의 행동과 말 한마디를 모두 감시한다. 이 감시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주인공 윈스턴은 감시에서 벗어나 불법적인 행동을 하려 하지만 결국 들켜서 체포된다.

우리나라도 텔레스크린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QR코드 인증이다. 올해 6월부터 고위험 시설로 지정된 곳은 QR코드 전자출입 명부를 작성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덕분에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할 시 빠르게 접촉자를 추정하여 격리할 수 있다. 새로운 감염자가 발생할 때마다 감염자의 이동 노선이 공개되고 감염자가 방문했던 시설은 폐쇄된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적은 감염자를 기록한 모범 방역국으로 뽑히고 있다.

하지만 개인 정보가 쉽게 노출된다는 점에서 불편하다. 국가가 전 국민의 개인 정보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지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반대하기도 쉽지 않다. 자유를 외치며 개인 정보 작성을 거부한 미국과 유럽 국가에선 감염자가 폭증하고 있다. 나도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경각심은 지녀야 한다. 우리의 안전은 개인 정보를 담보로 얻어낸 성과다. 근미래 어떤 지도자가 이러한 시스템을 악용한다면 최악의 독재자가 탄생할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도청과 감시를 일삼은 독재 정권은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독재 정권은 국민들을 감시하고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고문했다. 70~80년대엔 CCTV가 없었지만 지금은 철저한 감시체계가 갖춰져 있다.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발판이 있다. 국가권력의 악용을 막기 위해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아픈 과거를 가진 나라인 만큼 지금 다시 반복될 위험이 있다. 2016년 테러방지법 제정 당시 야당과 국민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것을 염려해 항의했다. 결과적으로 테러방지법은 통과됐지만 정부는 국민의 견제를 의식했다. 지금까지 무고한 시민을 체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국가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에 의식하고 항거해야 국가의 절대적 권력을 막을 수 있다.

1984 속 일반 시민들인 프롤은 의식 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텔레스크린을 활용한 감시 체계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윈스턴은 이들을 계몽시킬 목적으로 다가가나 실패한다. 우리도 프롤처럼 행동할 것인가? 1984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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