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의 현재 상황

족보는 씨족의 계통을 기록한 책을 의미한다. 이런 족보는 현대 대학가에서 이전에 시험 문제로 출제된 문제들과 요약본 혹은 같은 수업에서 높은 학점을 받은 학생의 보고서 및 답안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가의 족보에서 한 씨족은 강의 혹은 교수님이고 계통은 기출문제이다. 

우리 학교 학생 1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족보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총 95.1%가 ‘예’라고 답했다. 그만큼 ‘족보’는 우리 주변에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우리 학교 익명의 학우는 지난 학기 영역별 교양 한 과목을 들었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시험을 보았지만 생각만큼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속상하지만 자신의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한 해당 학우는 얼마 전 동기 중 한 명이 후배에게 꿀 강의라며 그 과목을 추천하는 것을 듣게 됐다. 동기는 “이 과목은 족보만 외우면 특정 학점 이상은 나온다”고 말했다. 언급된 학점은 해당 학우의 학점보다 한 단계 높았다. 해당 학우는 “족보만 보고 시험장에 들어온 학생보다 내가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충격적이다”며 “학습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들었다”고 말했다.     

족보 자체를 안 좋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만연하지만 족보는 그 자체로는 좋은 학습 도구이다. 시험을 준비할 때나 보고서를 쓸 때 학습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주어 학생들이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열심히 한 학생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정재영(다산학부) 교수는 족보 자체에 대해 “기출문제를 일종의 연습장이라고 생각한다”며 “훈련의 방법 중 하나이며 어렸을 때 수많은 교본을 통해 한글을 학습하듯이 공부를 하기 위한 기출 이용을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를 강조했다. 정재영 교수는 본인의 수업에서 기존의 기출문제와 평가기준 그리고 예시답안을 공개한다. 

 

왜곡된 족보 이용 실태

문제는 족보가 시험의 공정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족보는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부 학생들만 족보를 가지고 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학생 본인이 족보를 이용해보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42.2%의 학생이 ‘예’라고 답했다. 같은 교수가 같은 강의에서 출제한 기출문제를 보고 공부하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쉽고 정확하게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 실제로 설문조사의 족보 사용자를 대상으로 성적에 있어 족보의 영향을 물은 질문에 ▲26.8%의 학생이 ‘매우 컸다’ ▲36.6%의 학생이 ‘컸다’ ▲34.1%의 학생이 ‘그저 그랬다’ ▲2.4%의 학생만이 ‘전혀 효과 없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족보의 효과가 크면 족보의 이득 없이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게 되는 셈이다. 

그 일부 학생들의 족보 습득이 주로 인맥 혹은 구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족보가 시험의 공정성을 해치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설문조사에서 족보를 이용해본 학생 중 95.3%가 ‘족보를 취득한 경로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선후배 혹은 동기 등 지인을 통하여’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족보를 얻는 방식인 지인을 통한 습득은 보통 학과나 동아리 혹은 소학회 친한 선후배와 동기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달리 말하면 선택된 학생만이 족보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과 모든 학생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일부 학생들도 확인 질문을 하자 “학교 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고 답했다. 익명의 영어영문학과 학생은 “교내에 족보가 존재한다고는 들었지만 실제로 선배나 동기를 통해 그것을 받아본 적은 전혀 없다”며 “얼마 전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다가 내가 들은 수업의 족보를 산다는 글을 봤는데 만약 내가 들은 수업에서 누군가 족보로 성적 이득을 취했다면 매우 화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미디어학과 복수 전공을 준비하는 익명의 학우는 “지난 학기 정말 힘들게 코딩 수업을 들었다”며 “복수 전공생은 전공생에 비해 친한 선후배나 동기가 적고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아 족보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고 말했다. 

지인을 통한 족보 습득보다는 적은 수이지만 족보 매매도 분명히 발생하고 있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족보 매매(소스 매매)하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69.3%의 학생이 ‘예’라고 대답했으며 ‘족보 매매(소스 매매)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9.1%의 학생이 ‘예’라고 답했다. 우리 학교 익명 커뮤니티에는 2019년 3월 한 달에만 ‘소스’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족보 관련 게시글이 250건 넘게 올라왔다. 그 내용은 ‘ㅇㅇ과목 소스 삽니다’ ‘ㅇㅇ소스 팔아요’ 등 대부분이 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글이다. 커뮤니티에서 소프트웨어학과 전공 여섯 과목 정도를 판매 중인 익명의 소프트웨어학과 학우는 “보통 카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거래를 한다”며 “소스는 직접 만들며 ▲직접 한 과제 ▲실습 자료들 ▲중간 시험지와 기말 시험지를 찍은 사진 ▲필기노트 ▲교재 해답지 등을 모아 압축파일로 만들어 판매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학우는 “판매자에 따라 다르지만 본인은 만 원을 받고 해당 자료를 판매한다”며 “지금까지 약 열 차례 판매했고 여러 전공과목 중 코딩을 해야 하는 전공과목이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구매자가 퀴즈나 시험 유형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으며 판매자의 학점을 물어보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커뮤니티에서 화학공학과 전공과목과 여러 기초과목을 판매하고 있는 또 다른 익명의 학우는 “가격은 판매자가 먼저 임의로 정해 제시하지만 보통은 서로 합의를 본다”며 “판매는 오픈채팅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전했다. 익명 커뮤니티 뿐 아닌 지식거래사이트라는 이름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한 족보 거래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지식거래사이트인 ‘해피 캠퍼스’는 자신이 만든 자료로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사람이 해당 웹사이트에 자료와 원하는 가격을 등록하면 페이지 측의 검수 후에 자료가 홈페이지에 올라가고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그 자료를 구매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홈페이지에는 등록해서는 안 되는 자료에 ‘강의 시간의 자료 및 노트 필기’가 명시되어 있지만 홈페이지에 ‘아주대학교 보고서’만 쳐도 ‘아주대학교 ㅇㅇ실험2 A+ 소스 (결과보고서+예비보고서)’와 같이 학점과 소스임이 명시되어 있는 자료가 만 원에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대학교 요약’을 검색해도 마찬가지로 ‘아주대학교 ㅇㅇㅇㅇ의 이해 요약’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강의의 요약본이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 빈번하게 일어나는 족보의 매매는 특정 학생 성적의 이득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의 상업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윤리는 배제된 채 돈을 가진 자가 성적 향상에 있어 더 쉽고 빠른 지름길을 걷게 되고 그것이 당연한 관행처럼 굳어질 우려가 있다. 송재룡(경희대·사회) 교수는 “우리의 현실 자본주의는 도덕적 절제나 덕스러움의 차원이 잘려 나간 채 물신적 또는 배금적 논리와 원칙만이 강화되어진 왜곡된 자본주의이다”며 “이런 자본주의의 논리에 도구주의적으로 종속되어지면 대학 교육 전반이 본래의 교육 목표나 이념과는 동떨어진 채로 파행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지식의 자본에의 예속화는 지식 생산체가 정치·경제적 관리와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족보는 여러 왜곡된 결과를 초래한다. ‘꿀 강의’도 그 연장선이다. 꿀 강의는 다른 강의보다 비교적 쉽게 고 학점을 얻을 수 있는 이른바 ‘꿀 빠는 강의’의 줄임말이다. 꿀 강의라고 평가받는 강의는 기출과 같거나 비슷하게 시험 문제를 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족보를 가진 학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학점 보장’ 강의인 것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학습의 무의미함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족보에 의존하게 하여 실력을 쌓자는 취지를 잊고 고학점만을 좇는 학점 제일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다. 꿀 강의임이 입소문 날수록 수강을 원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수요가 많으니 학교 측의 지원이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족보 문제의 해결 방안

단순히 기출문제였던 족보가 어떻게 이런 불편한 문제를 낳았을까? 대표적으로 두 가지의 원인이 있다. 첫 번째로는 앞서 이야기한 꿀 강의의 또 다른 주범으로 족보를 유효하게 만드는 강의이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출제하는 강의가 사라진다면 족보의 필요성도 사라져 자연스럽게 해당 수업의 족보도 사라질 것이다. 정재영 교수는 “교수 입장에서는 매 학기 다른 문제를 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오히려 점점 더 문제의 질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의견을 말했다. 두 번째로는 교육 평가 제도의 문제이다. 우리 학교 대부분의 수업이 상대평가를 한다. 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익을 얻는 학생과 피해를 보는 학생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것이 공정성 훼손이라는 족보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익과 피해를 보는 학생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족보를 사용하지 않거나 모두가 족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의 방안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족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정경훈(영어영문) 교수는 “족보는 당장은 학생들 사이에서 좋은 것처럼 보이는 인식이 있으나 그것에 의존한다면 결국은 깊이 있는 학습이 제한되어 자기 발전과 응용 능력 그리고 상상 능력을 퇴화하게 만든다”며 “그것은 족보를 이용하는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고 족보의 폐단을 학생들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교수가 평가방식과 예시답안을 공개하는 등의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또 다른 해결책이다. 정경훈 교수는 “교수 한 명이 시험문제를 내는 대학 강의 특성 상 수능처럼 시험문제를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신 기존에 학생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교수가 제공하던 자료들을 좀 더 구체화시켜 제공한다면 학생들이 족보 없이도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정재영 교수는 “서술형과 논술형 같은 시험은 예시 답안을 공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학생 개인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된 답안을 제공하기가 어렵다”고 한계를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은 공식적으로 족보를 만들어 모두에게 배포하는 방법이다. 이는 실제 우리 학교 일부 학과에서 시행 중이기도 하다. 간호학과와 의학과는 학생회 차원에서 족보를 제작하여 배포한다. 간호학과 학생회는 ‘생활족보’라는 이름으로 강의 설명과 병원 합격 수기 등 간호학과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여 1년에 한 번 3월 초에 개강식 등 과 행사에서 전체 학우들에게 제공한다. 강의에 대한 내용으로는 ▲원어 강의인지 ▲시험이 있는 과목인지 ▲전공책을 사는 것이 좋은지 ▲지각 등 수업별 특별 주의사항 등을 제공한다. 익명의 간호학과 학생은 이에 대해 “간호학과에서 생활하는데 중요한 것만 꼼꼼하고 자세하게 잘 적혀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족보에 관해 취재하며 인터뷰한 많은 학생 가운데 일부 학생들은 “일부러 족보를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한다” 혹은 “평소와 같은 노력을 투자한 뒤 족보는 실전에 대비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족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형적인 현상을 없애고 학습 수단으로서 정직한 방식으로 족보가 공유되고 이용된다면 족보는 유익한 학습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수십 년간 이어 온 족보가 이대로 관습으로 굳어질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우리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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