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 흔한 화장실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녀공용 이 세 가지뿐이다. 여기서 남과 여 로만 이분된 화장실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성 소수자다. 이들의 고민을 해소해줄 ‘성 중립 화장실’은 이미 해외에서는 비교적 보편화된 개념이다.

성 중립 화장실이란 성별이나 장애 유무의 구별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1인용 화장실을 말한다. 남자용 소변기를 따로 설치하지 않고 양변기와 세면대만을 설치해 화장실의 성별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성 중립 화장실의 도입 요구는 2010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남자 화장실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를 계기로 트랜스젠더가 화장실에서 겪을 수 있는 폭력의 가능성 대한 사회적 고민이 확산됐다. 주된 주장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여성적인 외모를 가졌다거나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들이 성별이 구분된 화장실을 이용할 때 언어폭력이나 성폭력에 노출된다는 것이었다. 논란이 확산된 이후 2015년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불어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부터 모든 공공건물에 성 중립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트랜스젠더가 공중화장실 이용에 두려움은 해외에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시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국내 트랜스젠더 중 35.8%가 지난 5년 동안 화장실 이용을 제지당한 적이 있고 34.8%가 화장실 이용 과정에서 모욕적인 발언이나 물리적인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성 중립 화장실 도입은 두려움에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던 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1호 트랜스젠더 변호사라고 불리는 박한희 씨는 “트랜스젠더 직장인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장애가 배설과 배뇨 장애다”고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에서 밝힌 바 있다. 사람의 필수적인 생리현상인 배설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장실을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이 두려워 이용하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인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홍성규 경기도지사 후보는 ‘성 중립 화장실’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한 국내 대학 중에서도 성공회대학교에서 총학생회가 최초로 성 중립 화장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만만찮은 반발로 설치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우리는 성 중립 화장실 도입의 효율성과 부작용을 말하기 전 화장실이 사람에게 필수적인 공간이란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즉, 성 소수자들에게 성 중립 화장실이 단순히 불편함 해소를 넘어 꼭 필요한 공간으로 그들의 인권과 결부된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의 사이 혹은 그 교차점에 위치한 사람도 분명 존재하고 이들 또한 남자 혹은 여자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충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녀만이 구분된 화장실은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둘 중 한 곳으로 속할 것을 강요한다. 이 강요에서 벗어나 그들의 존재와 삶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 중립 화장실은 곧 인권이 반영된 대안이며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하나의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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