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시달린다. 과제에 시달리고 대인관계에 시달리며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강연이나 상담을 통해 도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빼곡한 수업과 과제를 피해 시간을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와 같은 갈증과 회의감은 내게 ‘멘탈 샤워’를 꿈꾸게 한다. 멘탈 샤워란 하루를 마무리할 때 몸을 샤워로써 깨끗이 씻겨내듯 멘탈도 재정비와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그러던 도중 친구가 짤막한 동영상을 소개해주었다. 본인이 힘들고 벅찰 때마다 그 영상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영상을 보고 있으면 영상의 내용이 마치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나의 멘탈도 샤워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다. 그렇게 그들의 스튜디오를 직접 찾아가게 됐다.

한지훈 작가님과 박철우 작가님은 청중 없는 강연을 3년째 함께 이어나가고 있다. 둘은 ‘모티브 브릿지’라는 제목으로 매주 심리치유에 관련된 영상을 제작하고 공유한다.

내가 방문한 날의 강연 주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랑하는 일이 나의 멘탈 샤워에 어떻게 도움을 줄까?

 

생각을 바로잡아야 삶의 질서가 바로잡힌다.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류를 피해 갈 수 없다. 당연히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자신에 관련된 생각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현대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할 때 그 생각들은 많은 경우 부정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우리가 입에 달고 산다시피 하는 “나 망했어”,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거야”, “오늘 나 진짜 못생겼다”와 같은 문장들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가 결국 그것들이 오류가 아닌 현실이라고 믿게 된다. 생각을 바로잡지 못해 스스로를 몰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자존감 결여와 극심한 우울 그리고 부정적 생각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이것을 스스로 해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부정적 자기인식을 알아서 뚫고 나와 자신의 가치를 기꺼이 찾아낼 만한 시간과 동기를 세상은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바로잡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두 작가는 말한다.

물론 요즘 같은 때에 따뜻한 칭찬과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은 소위 말하여 오글거리는 말들을 잔뜩 얻을 수 있는 감성적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등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수용만 가능할 뿐 반대로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할 수는 없다. 그들은 꾸준한 노력과 반복을 통해 그런 일이 자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쉽사리 판단하는 것을 멈춰라.

사람들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판단한다. 사람들이 판단하는 일을 얼마나 즐기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는 꽤나 오래 유행을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 속에 등장하는 많은 지원자들이 붙을지 또는 떨어질지, 실력은 어느 정도고 누가 더 잘하는지 등을 쉴 새 없이 판단하기 때문에 운영이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한지훈 작가님은 판단을 타인에 대한 것과 상황에 대한 것 두 가지로 구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유형의 것이든 매우 큰 위험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먼저 타인을 판단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들을 ▲능력 ▲성격 ▲외모 ▲재력 등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이 판단에만 그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그러한 판단을 거친 후 판단한 내용을 자신에게 대입시켜 비교한다. 거기에서 얻게 되는 건강치 못한 우월감과 박탈감이 버릇이 된다면 그것들을 되돌려놓을 길이 없다. 또한 남들을 판단하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면 반대로 남들이 나를 판단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좋지 못한 평가를 얻지 않기 위해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어 그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다음으로는 상황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뉴스에서 보게 된 정치판이나 지인의 지인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를 매우 심각하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상황이 당장 ‘나의 일’이 되면 판단의 수준과 깊이가 달라진다. 판단이 잦은 사람은 종종 누군가가 나를 흘겨보았다고 느꼈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는 판단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을 고민하게 된다. 그 판단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된 채 말이다. 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들은 전부 지나치게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일들에 에너지를 전부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내 삶에 중요치 않은 요소들까지 하나하나 판단하려고 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끝내 판단의 노예가 된다. 이에 대해 두 작가님은 내가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경계하라고 말했다. 판단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객관성 있게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즉 두 개의 소주제들의 핵심 내용은 부정적 생각을 바로잡고 무분별한 판단을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촬영 현장을 지켜보면서 내가 부정적인 생각과 지나친 판단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해왔는지 고민했다. 그렇게 그날의 특별한 경험이 나에게 어떤 멘탈 샤워를 선물해줄지에 대한 기대를 품고 나의 걸음은 마무리되었다.

그곳에 다녀온 후 많은 시간이 지나진 않았지만 그 사이에 나의 태도가 변화한 것은 분명하다. 평소에는 지인들이 나에게 고민을 토로할 때 사실 나는 조금의 부담감을 가지곤 했었다. 나의 고민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친구의 고민에 대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에는 해줄 말이 생겼다는 것이 즐거웠다.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친구가 그 고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상투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지금 너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며 그것들이 너에게 모두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친구의 멘탈에 도움을 줬다는 생각이 아닌 내 스스로의 멘탈이 말끔히 정리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탈 샤워라는 단어의 등장과 유행이 보여주듯 나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인들은 무언가에 시달린다. 그러나 일정을 조정하고 돈을 지불하고 멀리까지 찾아가면서 그럴 수 있는 여력은 없다. 그러다 보면 더더욱 시달린다. ‘날 위해’ 투자하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스튜디오와 촬영 장비는 조촐하고 소박했다. 하지만 그들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도 위로를 얻을 수 있는 모티브 브릿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나는 아주대학교 학우들이 모티브 브릿지가 전해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랑하는 방법을 마음에 되새기길 원한다. 궁극적으로는 그를 통해 멘탈을 샤워시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길 바란다. 물론 현대사회가 현대인들의 멘탈 샤워를 위해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제공해준다면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는 버텨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는 한도 내의 시간과 비용으로 멘탈 샤워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사치가 아닌 가치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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