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84학번 조덕제입니다. 아주대 축구부에서 뛰다 1988년에 졸업한 뒤 대우 로얄즈에서 9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한 뒤 아주대로 돌아와 코치와 감독을 지냈습니다. 최근까지는 K리그의 수원 FC에서 감독으로 있었습니다.”

한양대와의 U리그 경기가 막 끝났던 지난 12일 늦은 오후에 조덕제 감독을 만났다. 앞서 진행됐던 경기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Q. 1980~90년대 명문 구단이었던 대우 로얄즈에서 9년 동안 주전으로 활약하셨는데, 대우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대학교 3학년 때까지는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었어요. 4학년에 올라가서는 측면 또는 중앙 수비수를 주로 보며 다른 포지션에서 빈자리가 생길 때 제가 대신 들어가곤 했었죠. 4학년 때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했던 것이 대우에 입단하고서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어요. 돌아보면 저는 당시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축구 스타일을 잘 잡아냈고 저한테 요구하신 역할을 잘해내는 선수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팀도 선수들마다 역할 분담이 확실했기 때문에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기도 했죠. 그래서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처럼 화려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우에 입단한 첫 해부터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경기에선 11명이 다 잘하는 것도 좋지만 부지런하고 투지가 좋은 선수도 필요해요. 그때 저와 같이 뛰던 선수들이 ▲김주성 ▲변병주 ▲이태호 ▲정해원과 같이 국가대표 경력이 있고 당시 리그에서 한 가닥 했던 선수들이었어요. 선수들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면서 자기 포지션에서 주어진 역할을 모두 잘하는 선수들이었죠. 그 가운데에서 제가 맡았던 역할은 다른 선수들이 못 하는 부분을 마저 채워주는 것이었어요. 미드필더로서 공을 받으면 우리 팀 선수들의 특징에 맞게빠르게 공을 전달하는 역할도 했고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했던 제가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인 것도 같아요.

 

Q. 1989년 베스트 일레븐에 당당히 선정되셨습니다. 베스트 일레븐에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1989년 당시는 리그 경기와 왕중왕 전까지 한 해에 44경기 정도 치러졌는데 당시 저는 경고 누적으로 한 경기를 빼고는 모든 경기를 다 뛰었어요. 그와 함께 초반부터 어시스트를 계속 기록하면서 경기를 뛰다 보니 연말에 베스트 일레븐으로 뽑힐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Q.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신지 9년 만에 은퇴하셨는데,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A. 아주대 2학년을 재학하던 중 무릎 연골 수술을 처음 받고 졸업한 후에는 뼛조각 때문에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니기도 했어요. 이후에도 거의 매년 꼭 한 번씩은 수술을 받았던 것 같네요. 현재는 팀마다 전문 트레이너나 재활 센터가 다 있지만 당시엔 그런 것들이 없었고 주먹구구식으로 재활을 했기 때문에 완치되기 어려웠어요. 게다가 어느 정도 나으면 바로 경기에 나갔기 때문에 이후에 수술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1995년과 1996년 발목 수술을 두 번 받고서는 경기를 뛸 수 없을 정도가 됐고 결국 1996년 7월에 아주대학교에 코치로 부임하게 됐어요. 원래는 몸이 회복이 되면 다시 팀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회복이 잘 되지 않았고 결국 그해 11월 부산으로 가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은퇴했죠.

 

Q. 코치로 처음 아주대를 가셨을 때 느낌이 많이 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A. 대우에서 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뛰다 아주대 코치로 처음 부임했을 때 제 눈에는 학생 선수들이 부족해보였죠. 그래서 새벽마다 같이 운동하고 밤에도 선수들이 어떤 운동을 하는지 지켜보며 선수들에게 하나 더 가르쳐주려고 운동장에 나갔어요.

 

Q. 아주대 코치를 맡으시다가 ‘김희태축구센터’에서 감독을 맡게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또한 대학생들과 아이들을 지도할 때 다른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A. 코치를 맡은지 7년 째 되던 해 스승님이셨던 김희태 감독님이 ‘김희태축구센터’를 막 여신 뒤 저에게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셨어요. 당시 몇 가지 사정이 있어서 미련 없이 축구센터의 감독으로 가게 됐어요. 그리고 거기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어요. 돌아보면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두 곳에서 코치를 해보니 대학생과 아이들은 많은 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먼저 대학생은 어떤 것을 지시하고 가르쳐도 본인들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커요. 더불어 대학생은 더 성숙한 성인으로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선수들을 이해하고 배려도 해줘야 해요. 거기다 취업 문제도 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그에 관한 교육도 해줘야 하고 선수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하죠. 반대로 아이들은 어떤 것을 가르쳐주면 그것을 따라하며 배우려는 자세가 뚜렷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축구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아주대 감독 시절의 조덕제 감독 <사진=KFA>
아주대 감독 시절의 조덕제 감독 <사진=KFA>

 

Q. 2005년부터 아주대 감독으로 일하게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첫 감독직을 맡으시면서 감독님 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모교인 아주대학교에서 감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전부터 있었어요. 김희태 감독님께서 만류하셨지만 그래도 이력서는 넣어보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다 면접까지 보고 감독으로 선임돼 2010년까지 아주대 감독으로 일하게 됐어요. 처음에 아주대 코치로 부임했을 땐 저도 선수들에게 뭘 가르쳐야 하는지, 제가 코치로서의 자세가 됐는지, 지도자로서의 철학이 있는지 잘 몰라 그런 것들을 배워가면서 했어요. 처음 맡는 코치라 미숙하다보니 선수들에게 욕이나 손찌검도 하며 막 다그치기도 했죠. 하지만 많은 감독님들을 모시며 그분들이 어떻게 선수들을 지도하시는지를 보고 느꼈고 아주대 감독으로 부임할 땐 이전에 비해 많이 성숙해져서 갔던 것 같아요.

수원 FC 감독 시절의 조덕제 감독 <사진=수원FC>
수원 FC 감독 시절의 조덕제 감독 <사진=수원FC>

 

Q. 아주대 감독에서 물러나신 뒤 2012년부터 수원시청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셨는데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A. 아주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2011년부터는 수원시청 축구단에서 유소년 팀을 지도했어요. 이전에 아주대 감독으로서 성실하고 열심히 했던 것과 유소년 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같이 어울리는 것을 누군가 보고 전임 시장님께 추천하셨던 것 같아요. 덕분에 수원시청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좋게도 제가 부임한 그 해에 내셔널리그에서 팀이 바로 우승했었죠. 보통 신임 감독이 부임한지 1년 만에 우승하기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임 감독님이 좋은 선수들을 많이 꾸려놓으셨기 때문이었어요.

 

Q. 2015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세 팀을 연이어 꺾고 팀을 클래식으로 승격시키셨습니다. 승격할 수 있었던 이유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수원시청 축구단이 프로 축구단인 수원 FC가 되고서 3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뿐만 아니라 구단과 코치가 모두 열심히 해준 덕 분이었어요. 거기에 기존에 있던 선수들도 잘 해주기도 했고요. 돌아보면 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루기 힘든 꿈을 이뤘던 것 같아요. 구단이 돈이 많지 않았지만 적은 돈으로도 짧은 시간에 K리그 챌린지를 거쳐 K리그 클래식까지 승격했기 때문이에요.

승강전을 치른 당시는 운이 매우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요구하고 원하는 대로 경기가 풀렸기 때문이었죠. 단적으로 부진한 선수 대신 다른 선수를 넣었는데 그 선수가 잘해줬던 적도 있었고요. 특히 부산과의 최종전을 준비하면서는 수비적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두 경기 모두 생각과는 반대로 상대를 밀어붙이다보니 이길 수 있었어요. 이렇게 승강전이 잘 풀리다보니 후회 없이 경기를 하고 클래식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승강전을 준비하면서 저를 시작으로 구단과 코칭스태프에 선수들까지 많은 노력을 했어요. 거기에 선수들이 다 동기부여가 됐고 경기력도 물이 오른 상태였죠. 이렇게 선수들부터 코칭스태프 그리고 구단까지 투혼을 발휘해 혼연일체가 잘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세 팀을 연이어 이기고 승격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Q 친정팀과도 같은 부산을 꺾고 승격을 결정지었습니다. 당시 기분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A. 솔직한 마음으로는 너무 좋았고 승격을 확정지은 그 순간의 기분을 억누르 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부산이 대우 로얄즈 시절 제가 9년간 선수 생활을 해왔던 팀이고 경기가 진행됐던 구덕운동장이 현역 때 홈경기를 뛰었던 경기장이었기 때문에 기쁨을 표출하기가 미안했죠.

 

Q. 지난 시즌 야심차게 시작한 K리그 클래식에서의 첫 시즌이었지만 아쉽게 다시 챌린지로 돌아가게 된 시즌이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생각하시게에 지난 시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K리그 클래식은 챌린지와는 달리 각 팀의 고유한 스타일이 다 달라요. 하지만 지난 시즌 저는 상대팀의 스타일에 상관 없이 제 축구 스타일을 그대로 펼쳤는데 그 점이 지난 시즌 실패했던 원인이 됐죠. 상대팀에 따라 임기응변을 잘했다면 질 경기도 비겨서 승점을 1점을 더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질 못했던 것이 너무도 아쉬웠죠. 그래서 마지막 라운드 경기를 할 땐 정말로 승점 1점의 소중함을 깨우쳤어요. 한편으로 경기 운영을 조금만 더 짜임새 있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아요.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 2:0으로 이겨야 잔류가 결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는데 결과적으로 1:0으로 지면서 강등이 확정된 그 순간이 제일 아쉬웠어요.

더불어 클래식을 준비하면서 ▲가빌란 ▲오군지미 ▲이승렬 ▲이승현과 같은 이름 있는 선수들을 많이 영입했죠. 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갈 땐 이름 있는 선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또한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면 틀림없이 원래 자기의 폼을 되찾을 것이라 생각했기도 했죠. 하지만 돌아보면 큰 실수였던 것 같아요. 더 큰 꿈을 이루고자 새로 영입한 선수들과 기존에 있던 선수들을 한 팀으로 이끌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또한 그때 영입했던 일부 선수들은 이전에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열심히 뛰려 해도 몸이 잘 따라주지를 못했어요. 이러한 부분들이 작년 시즌에서 가장 아쉬웠어요.

 

Q. 지난 8월 수원 FC의 감독직을 사임하셨습니다. 사임을 결정하시게 된 계기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자진사퇴기 때문에 사퇴를 한 이유에 대해 다른 말을 더 말하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작년 클래식에 있을 때보다도 올해 다시 승격하고자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투자해 더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 가장 컸죠.

작년에 클래식에서 경기했던 것보다도 올해 선수들의 폼이 더 좋다고 느꼈는데 그에 비해 경기력이 지난해에 비해 악화됐고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한 팀이 될 수 있게 감독이 이끌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이번 시즌의 부진한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구단주나 프런트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기에 제가 책임지고 사퇴를 하게 됐어요. 또한 그 당시 리그 경기가 10경기 정도 남았는데 감독인 제가 자진해서 사퇴하면 선수들이 더 집중해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사퇴하겠다는 마음을 정한 뒤 마지막으로 구단주이신 시장님과 이사회를 뵙고 나서 선수들에게도 사퇴한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그러면서 남은 경기 책임감 가지고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죠. 그때 저와 선수들 모두 울컥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인사를 한 다음 날이 안양과의 경기
였는데 그날 경기 끝나고 나오는 선수들 모두와 한 번씩 포옹해주며 고생했다고 말해줬어요.

 

Q. 수원 FC 감독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첫 번째로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내셔널리그의 수원시청 감독으로서 1년을 보낸 뒤 팀이 프로 구단이 돼 챌린지로 올라가는 그때였어요. ‘2부 리그지만 그래도 프로팀의 감독을 맡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 다음으로 감격스러웠던 때는 클래식 승격 후 두 번째 경기였던 성남 FC(이하 성남)전이었어요. 그 경기는 홈구장인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됐는데 당시 1만명이 넘는 관중이 찾아오고 각 언론사와 방송국에서도 왔던 것을 보며 K리그 클래식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수원 더비'를 앞둔 기자회견에서의 조덕제 감독 <사진=수원 삼성>
'수원 더비'를 앞둔 기자회견에서의 조덕제 감독 <사진=수원 삼성>

 

Q. 지난 시즌 수원 FC는 성남과의‘깃발 더비’그리고 수원 삼성과의‘수원 더비’처럼 많은 더비전을 가졌는데 감독님께 이런 더비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A. 당시 깃발 더비는 염태영 수원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이 같은 당이고 또 수원 FC와 성남 모두 시민구단이기 때문에 이슈가 됐죠. 감독과 선수 입장에서도 언론에서 더 많이 조명을 받으면서 팬들도 더 오기 때문에 감사했죠.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컸던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리가 지면 우리 홈구장에 성남의 깃발이 다음 경기까지 걸려있는 걸 봐야 했기 때문이었죠.

마찬가지로 수원 삼성(이하 수원)과의 ‘수원 더비’를 치르기 전에 시청 앞에서 염 시장님과 수원의 서정원 감독과 함께 인터뷰할 때 진짜 더비전을 치른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특히 경기 전에 서포터들이 깃발 들고 도로를 걸어 운동장까지 응원을 온 기억은 아마 평생 남을 것 같아요.

수원하고 경기를 할 땐 물론 우리가 진다는 생각을 거의 안했어요. 한편으로는 수원은 좋은 팀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우리가 한 수 배운다는 입장으로 경기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지난 시즌 수원과 총 4경기를 했는데 1승 3패의 성적을 거뒀죠. 처음엔 1-0, 1-2로 졌는데 그래도 경기
내용상으로는 크게 뒤처지는 것이 없었다고 봤어요. 그러다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5-4로 이겼는데 수원 FC가 클래식에서 경기를 치르며 어느 정도 성장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래서 이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지 않았나 싶어요. FC 서울하고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서도 5-4가 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수원 더비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았을텐데 짧은 시간으로 막을 내린 것이 아쉽죠.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클래식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더비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Q. 감독님의 전술로는‘막공’(막을 수 없는 공격)이 유명한데, 여기에 담긴 감독님의 생각과‘막공’에 필요한 조건도 궁금합니다.

A. 선수로 뛰던 시절 수비도 보고 미드필더도 봤지만 대학교 때에도 공격적인 성향이 더 강해 공을 뒤로 돌리며 수비적으로 하는 축구는 좀 별로였어요. 한 골 지키기보다는 한 골을 더 넣는 축구를 원했기 때문에 아주대 감독 시절부터 양쪽 측면을 통해 계속해서 공격하는 스타일을 선수들에게 주문했죠. 수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해서도 공격적인 전술을 계속해서 유지했죠.

‘막공’ 전술을 펼치려면 먼저 선수들의 체력과 스피드가 필요해요. 수원 FC가 그 전술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측면 공격수 선수들이 스피드가 좋았고 측면 수비수들도 공격에 계속 가담해줬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올해는 측면 수비수 선수들이 그런 역할을 잘 해주지 못해 득점도 더 적었고 수비에서도 실점이 많아지다 보니 부진했던 것 같아요.

 

Q. 앞서 말씀하셨지만 이름값이 있는 선수를 영입하실 때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A. 선수들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금액 부분에서 조건이 맞아야 하고 또 제가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선수가 오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 팀에서 약한 포지션이 있을 때 구단에 좋은 선수를 영입을 의뢰하면 구단이 영입 작업에 들어가요. 구단에서 바로 영입하기도 하지만 직접 한 번씩은 직접 선수에게 통화를 해 같이 해보자고 하면서 영입 의사를 전달하기도 해요. 대표적으로 올해 영입했던 백성동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제 마음을 이야기했는데 백 선수가 그 마음을 느꼈기 때문에 수원FC에 왔던 것 같아요.

 

Q. 수원 FC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어떤 선수가 있었는지, 그리고
수원 FC는 어떤 의미로 남으실 것 같은지 궁금합니다.

A. 수원 FC의 감독을 맡으면서 많은 선수들이 다 기억에 남아 누구 한명을 딱 정하기는 어렵네요. 간단하게 메시 10명을 만드는 게 아닌 메시 같은 선수를 10명을 만드는 게 제 스타일이기 때문에 굳이 한 명을 딱 뽑기는 뭐해요. 수원 FC에서 같이 저와 열심히 해준 모든 선수들이 소중했었죠.

또한 수원 FC는 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 팀이고 또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원 ▲울산 현대 ▲전북 현대 ▲FC 서울과 같은 팀들과 잠시나마 어깨를 같이하기도 했으며 저를 조금이나마 좋은 감독으로 만들어 준 팀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지금의 수원 FC를 만든 사람’이란 평가는 과찬인 것 같아요. 많은 코치들과 구단 프런트가 뒷바라지를 해주고 저를 믿고 인정해줬기 때문에 지금의 수원 FC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Q. 감독님의 지도자로서의 철학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특별한 철학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저는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한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노력하는 만큼에 대해 선수들과 주위의 사람들이 저를 인정하고 믿고 따라주지 않았나 싶어요. 그만큼 더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운동장에서만 산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어왔던 것 같아요.

선수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것은 팀플레이였어요. 그래서 한 명의 주연보다는 조연 10명이 모두 함께 팀 전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황을 주문했죠. 더불어 대학 축구가 학원스포츠이기 때문에 동우애로 더불어 같이할 수 있는 축구 스타일을 추구했어요. 똑같이 지도자로서도 제가 아무리 혼자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에요. 옆에 있는 코치들과 프런트 그리고 선수들이 같이 할 때가 돼서야 좋은 팀이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토록 중요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 축구관은 지금도 변함이 없죠.

아주대 코치를 맡았을 때부터 항상 선수들에게 ‘어떤 팀을 가든지 감독님께서 한 달 동안 어떤 요구와 말을 가장 많이 하는지 유심히 잘 보라’고 말해요. 감독님이 요구하는 걸 선수가 그대로 해내면 그것만으로도 최고로 좋은 선수가 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해내면 감독의 눈에도 계속 띄니 지속적으로 기회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죠. 저 한편으로도 그것이 맞다 생각해 지금도 그렇게 살아오고 있어요.

또한 항상 제가 선수들에게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해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려 노력하려는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현장에서부터 이론적인 면이나 생활적인 면이나 항상 선수들에게 모범이 돼야 선수들이 저를 가식적으로 느끼지 않죠. 항상 정신적으로 선수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투명하게 거짓이 없고 또 투철해야한다고 생각해요.

 

Q. 현재는 어떻게 살고 계신지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틈이 날 때마다 경기를 보러 다니고 있어요. 경기를 보면서 저와는 다른 감독들의 축구 스타일을 보고 제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돌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축구를 잊어버리지 않아 지금도 축구를 보면서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11월에는 축구 최고 지도자 자격증인 P급 라이선스를 따러 영국에 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그 전까지는 과제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Q. 마지막으로 아주대학보 독자 및 아주대학교 동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먼저 아주대 동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하며 다른 동문들도 자신의 분야로 이끌어주는 그런 아주대가 됐으면 합니다. 아주대학보에 K리그가 실리기는 어렵지만 조덕제란 사람을 학보에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대 학생들이 학보를 읽고 학보에 이런 면도 있다는 점도 느끼며 학보의 소중함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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