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4년 2월 8일 네 번째 기사에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니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라는 내용을 사관들은 있는 그대로 적었다.

권력 앞에 숙이지 않는 직업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이 직업은 바로 사관이다. 이들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책임을 가지고 기록을 남겨왔다. 사관이 쓴 기록들은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사관들은 당시의 왕이 눈을 감을 때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본인이 직접 쓰는 직필의 법칙을 지켰어야 했다. 그 누구보다 사관들은 근성을 가지고 왕들의 행적을 사실 그대로 후대에 알려야 했다. 그렇기에 조선왕조실록은 세계 유네스코에도 선정돼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했다. 있는 그대로 적어야 하는 사관들은 시대가 변하면서 실록을 쓸 때 본분을 점점 잊어갔다. 단종실록은 세조의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양대군에 관한 사실을 과장하고 미화했다. 반면 세조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비방하고 논죄한 것이 과장돼 나타나 있다. 연산군 일기에는 중종반정으로 집권한 연산군의 비행 폭정을 강조하기 위해 객관성이 결여된 서술이 존재했다. 이렇게 단종실록과 연산군일기처럼 다른 왕들의 실록에도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사관들이 처음에 가졌던 책임감과 긍지를 잃은 것이다.

현대에도 권력 앞에서 숙이지 않은 한 직업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책임감을 가지고 진실을 전하는 기자라고 불렀다. 과거 그들은 5. 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리기 위해 영상기사를 남기는 등 기자라는 직업에 책임감을 가지고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앞서 말한 사관과 기자는 많은 연관성이 있다. 사관은 왕들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쓰는 사람이며 그렇기에 정보가 왜곡이 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기자 또한 객관적 사실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며 대중들의 알 권리를 위해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의 기자들 또한 과거의 사관처럼 책임감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기자라는 말을 하면 같이 떠오르는 단어인 ‘기레기’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요즘 한 주제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면 언론사만 다르고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수십 개의 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수원 여중생 마약’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어느 한 일보가 기사를 썼고 그 이후 전국의 신문과 방송 보도가 뒤따랐다. 이들 중 대부분은 경찰에 정확한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베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사들 속에서 과거에 책임감을 가지고 진실을 전했던 기자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이러한 행태들이 기자를 ‘기레기’로 만들었고 더 이상 대중들은 기자들을 믿지 않게 됐다. 이렇듯 현재 대다수의 기자들은 왜곡된 조선왕조실록을 쓴 사관과 같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

사관들은 조선시대가 막을 내리며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들의 공은 높게 평가될지라도 끝에 기록한 왜곡들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기자들에게는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다. 현대의 사관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사관과 기자로서의 초심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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