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영란법이라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부정 청탁과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을 입안한 사람이 김영란이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는 전 국민권익위원장이고 ‘소수자들의 대법관’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다. 동시에 ‘판결’ 시리즈로 세 권의 책을 낸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아주대학교 법학 전문교육원에 석좌교수로 있다. 이번 호에서는 김영란 교수님을 직접 만나 뵙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자기소개 부탁한다.

A 법원에서 판사로 일하다가 2010년에 퇴임했다. 2011년부터 권익위원장으로 일했고 그 뒤로 지금까지 대학에서 석좌 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영란이다.Q 법조인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A 여성으로서 길게 활동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고 사회과학대학에서 법과대학이 가장 선호되는 진로였다. 성적도 충분했기에 안 갈 이유가 없다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이에 따라 개인적인 소질이나 취향과는 별개로 당시 여성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고 사회에서 자리매김하려면 법조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Q 법조인으로 있는 동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느낀 일이 있었는가?

A 여성 인권이나 성차별 문제를 가장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가사 노동 배분은 논의조차 안되던 시대에 판사직을 수행하며 육아도 했다. 재판이 없는 날은 학부모 봉사를 하러 학교에 나가야 했다. 집안일까지 하면서도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판사 업무 역시 병행했다. 판사직을 수행하면서도 여성 판사들이 일터에 늘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문제들을 피부로 느끼고 나서야 여성 인권이나 성차별 등의 문제가 이론상의 것이 아닌 현실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보기에 핸디캡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어느 분야든 위와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Q 법조인로서 재판을 하며 가장 중요시한 것이 무엇이었는가?A 법정에서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전히 대중들로부터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는데 판사를 지낼 당시 당사자가 사건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정에 당사자로 서게 되면 긴장해서 사건의 진행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 때 판사는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한 설명으로 당사자의 이해를 돕고 사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나타내야 한다. 사후에 아쉬움이 없도록 재판의 승패와 무관히 당사자의 이해는 중요하다.

Q 법조인을 지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무엇인가?

A 대법관 시절을 꼽고 싶다. 기록에 파묻혀 지내던 몰입의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다른 생각 할 여유도 없이 일에만 매진했다. 지금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집중과 수련의 시기였기에 기억에 남는다.

Q 대법관 퇴임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다양한 여론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 당시 여론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A 100억을 포기한 여자라고 보도가 나왔었다. 그렇지만 변호사를 했더라도 그리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30년 넘게 판사였던 사람으로서 변호사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나 의미가 크게 부여된 것 같다. 물론 변호사로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훌륭한 변호사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선택한 문제라 생각한다.

Q 법조인의 시선에서 사회적 이슈일 때만 법이 통과되고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면 방치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법이 통과되면 문제가 빠르게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법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해야 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청탁금지법이 통과될 때도 이해충돌방지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상황이 흐르는 것을 보며 대중의 인식이나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기에 입법을 하는 사람들도 시민단체들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필요한 법이 있다면 널리 알리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입법에 대한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Q 법조인으로 지내며 청탁금지법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가?

A 권익위원장 부임 당시 청탁금지법의 내용 자체는 이미 대통령령인 공무원 행동강령에 규정됐었으나 위반해도 문제시되지 않는 상태였다. 이에 법으로 격상하면 강령 내용의 실효성이 확보될 것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사회의 각 직역별로 구체적인 윤리강령을 만들거나 개정하도록 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후 예상보다 일이 빠른 속도로 진행돼 훨씬 큰 반향을 일으켰다.

Q 청탁금지법이 통과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가?A 특별히 힘든 것은 없었다. 청탁금지법이 통과된 것은 권익위원장의 자리에서 내려온 후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말을 했는데 그때도 법의 통과보다 사회 전반에의 내면화와 문화적인 적응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시간을 두고 통과되더라도 논의가 지속되면 필요성에 대한 요구 또한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이 됐다.

Q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만 8년이다. 해당 법이 오늘날 얼마나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청탁금지법 구상 단계에서는 청탁이나 금품을 주고받는 것을 망설이고 거리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내용을 내면화해서 문화를 바꾸는 법이라고 말했다. 해당 법은 근본적으로 청탁이나 금품 등을 받지 않도록 해주는 보호의 의미를 내포한 법이다. 시행 초기에는 곧바로 부정 청탁 등이 근절될 수는 없지만 점진적으로 거절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평가하기 어려우나 현재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의도했던 방향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이라는 분들도 있고 유명무실해졌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Q 지난해 말 청탁금지법의 금액 제한이 완화됐는데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A 식사나 명절과 관련된 물가가 올랐는데 가격 상한선이 낮다는 비판은 늘 있었다. 사교 의례 목적인 경우 일정 한도까지 선물이나 식사비용 지급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로서 기본적으로는 주고받는 것 자체를 막는 취지다. 경제적인 이유로 완화하고 있지만 청탁이나 금품수수 등이 사람들에게 불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성공한 것 같다. 당장의 평가보다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좋겠다.

Q 오늘날 청탁금지법을 되돌아봤을 때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사교 의례 목적은 어디까지고 부정한 청탁은 어디부터인지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런 애매모호한 부분이 명확히 명시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이 해결된다면 지금 교수나 전문가들이 학술 활동 경비 제한이 있는 것처럼 더 많은 직업군에 따른 윤리나 차이들을 감안한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Q 대법관 퇴임 이후에 관해 구체적 계획이 있었는가?

A 책을 쓰고 싶었다. 6년간 대법원에 머무르며 진행한 판결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특히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 논리가 확실한 만큼 다각도의 의견이 녹아있다. 이와 같이 당시의 생각이나 판결의 배경을 깊이 생각하고 책에 옮기고 싶었다. 다만 막연히 쓰기보다는 관련된 강의를 하면 싣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틀이 명확히 잡힐 것으로 생각해 강의를 시작했다.

Q 교수직을 지내며 느끼는 바가 무엇인가?

A 차분하게 자료들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또한 교수로서 젊은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 좋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A 교수이자 법조인으로 일했던 선배로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강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이외에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과 매일 성실하게 사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고 방식이라면 방식이다.

Q 본보를 읽을 독자들에게 조언 부탁드린다.

A 과거엔 정해진 것을 열심히 하면 길이 있었다는 면에서 행복한 시대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은 하겠다고 마음먹어도 된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라 더 힘들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가 안 날 수 있다. 그렇기에 결과만 보고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고 또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남는다. 스스로 법률가라는 직업이 안 맞는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하지만 대법관이 되고 보니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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