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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積弊淸算,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 이주열 기자
  • 승인 2017.03.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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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목 : 암살

감독 : 최동훈

개봉일자 : 2015년 7월 22일

3월의 첫날은 우리 민족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다. 그날 우리 민족은 일제의 핍박 속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 후 3·1절의 함성은 다른 방식과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했고 이는 우리 민족의 디딤돌이자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모두가 이 함성을 반겼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배신했던 이들 혹은 일제와 함께 독립 운동가들을 핍박했던 이들이 바로 그중 하나다. 소위 친일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일본의 편에서 우리나라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에 앞장섰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들에 대한 논의와 처벌은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암살에서 볼 수 있다. 염상진(이정재 역)은 처음에는 독립운동가였지만 후에는 일제의 밀정 역할을 했다. 밀정 노릇을 하며 자신의 형제같은 동지들을 죽였고 젊은 시절 자신에게도 불타오르던 애국의 신념을 저버렸다. 그러나 해방직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 조사위원회)가 시작되자 친일파 염상진은 독립운동가로 둔갑하여 여러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였고 심지어 박수갈채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오래가지 않아 독립투사인 안옥윤(전지연 역)과 명우(허지원 역)에게 암살당한다.

"16년 전,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이라는 말씀. 지금 수행합니다" - 영화 암살-

만약 안옥윤과 명우가 염상진을 벌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염상진이 자신의 추악한 과거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은 물론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역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친일파 청산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바로잡지 못한 부분이 많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또 바로잡히지 못한 역사의 진통은 후대에까지 계속된다. 일례로 친일파에 대한 명확한 논의와 처분이 없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부호들에 대한 재산환수·친일파 인명사전에의 등재 여부 등이 사실상 잘 실행되지 않고 있다.

당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속해서 시행해 나갔더라면 50여 년이 지난 현시점 시행과정 상에서 후손들의 가처분 신청과 항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암살이 암살하고자 한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 관리, 일본의 협력자들만이 아닐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남아있던 일본의 잔재들을 다시 바로잡고자 했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때의 시대적 배경이 염상진을 암살할 수밖에 없었겠느냐라는 점이다. 개인에 의한 암살이 아닌 수십 수백 명의 염상진에 대해 법의 심판이 이뤄졌다면 조금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지 않았을 가하는 생각이 남는다.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단순히 문제의 주체에 대한 처벌 혹은 처분의 의미가 아니다. 처벌 혹은 처분뿐만 아니라 이후 후대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요구되는 것이다. 즉 처벌 혹은 처분을 통해 잘못된 것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하고 또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교육을 통해 건설적인 논의를 하도록 유도해야한다.

눈 덮인 길을 걸을때도 바르게 걸어라. 뒷 사람이 그길을 따라간다. - 백범 김구 -

역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후대에 전해질 역사는 지금 이 시각에도 흘러가고 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 역시 대중들에게는 논의되어야 하고 후대에 기억되어야 한다. 처벌받아야하는 사람이 있고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은 진행되어야 응당하다. ‘최씨 일가의 국정농단사건문화계 블랙 리스트그리고 이화여대 불법 입학등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후대에 과거에 대한 작업을 논의하는 것과 동시에 중요한 것은 현대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비판적이고 냉정한 자세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10일 대통령이 직무 수행상의 공정성 문제와 헌법 수호의 의지 결여에 대한 명목으로 파면됐다. 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건이 있었다. 1백만 국민의 촛불집회는 추운 겨울 바람 속에서 손을 녹인 국민의 희생의 숭고한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역사의 시계는 어쩌면 지금부터 일지도 모른다. 탄핵이 인용되고 정치권의 격동이 시작될 이 시기에 단지 새롭고 밝은 희망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전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우리의 무관심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주열 기자  julegoman@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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