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허탈해 했다. 아마도 대학에서 행정학 교수만큼 허탈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운영이 연구의 대상인데, 국가의 합리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붕괴되었고, 최소한의 인사원칙마저 실종되었으며, 강압과 특혜로 민간 재정이 동원되었고, 정부부처나 기관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제왕적) 대통령과 주위 사람들의 비윤리적 행태가 거론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이들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사익 추구를 공익으로 포장한 대통령,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일갈한 범죄자, 주군에 대한 충성으로 위증을 일삼은 행정관들, 그리고 지은 죄를 감추려 ‘모르쇠’로 일관한 고위직 奸臣(간사한 신하)들의 행동에는 거짓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실, 거짓은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에게 잘 어울리는 행동이다. 특히, 한국 정치인들의 거짓이나 오리발 내밀기는 세계 1위라 할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2013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전체 범죄 대비) 사기범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처럼 거짓말(행동)을 잘할까? 주로 사익 추구나 벌의 회피 같은 효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거짓이 역사적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있어 흥미롭다(김형희, 「한국인의 거짓말」). “사람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하멜 표류기) 선조들의 DNA, “거짓말이 능숙치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서글픈 역사, 그리고 살아남은 거짓말쟁이의 후손들이 “속은 놈이 바보”라고 외치는 세태 등이 오늘의 거짓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건, 우리는 이번 게이트를 계기로 거짓의 심각성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이 용납될 수 없다’는 칸트의 도덕적 훈계는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거짓이 “그 자체 악일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악으로 오염 시킨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경청해야 한다(플라톤의 대화록, Phaedo). 이는 거짓이 인간 삶에서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 주는 경구로서, 거짓은 타인은 물론 자신을 해치고, 궁극적으로는 습관화를 통해 영혼을 악으로 물들인다. 여기서 우리는 거짓 행위가 ‘습관’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이의 정당화를 위해 두 번째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 후부터는 아주 쉽게 거짓말을 하며, 끝내는 영혼과 이성이 완전히 황폐화될 때까지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을 줄이고 보다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인(고위공직자)들의 거짓을 줄여야 한다. 이들의 거짓 행위는 사회적 해악일 뿐 아니라, 국민의 모방적 행태를 조장한다. 어떤 정치인이 거짓말을 잘하고 그 질이 사악한지를 구분해야 한다. 다행히 이런 식별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거짓은 습관이기에, 정치인(후보)들의 삶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된다. 삶의 대부분을 건설업계에서 보냈거나, 사이비 교주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구설수에 올랐다면 좀 더 세밀한 국민 사정(査定)이 필요하다.

도덕적 결함으로 의심 받는 정치인들은 대개 자신들의 거짓 행위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정치철학이나 국정목표를 표방하곤 한다. 예컨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모두 재임 시 강한 어조로 부패척결을 외쳤고, 특히 왜 공직사회에서 (자신들이 아닌) 부하 공무원들의 비리가 없어지지 않느냐고 개탄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런 탄식을 ‘간 큰 사람들’의 ‘유체이탈’ 화법이라 했는데, 이는 거짓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보여 주는 전형적인 자기방어 행태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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